역사속 오늘, 무슨일이?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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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9월9일 이탈리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한국인 이름이 호명됐다. 영화 '씨받이'의 여주인공 강수연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 배우가 3대 영화제(칸·베를린)로 꼽히는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본상, 심지어 주연상을 받는다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시아권 배우로서도 최초였다. 강수연의 수상은 현지 언론들도 "베니스 영화제 사상 최대의 이변"이라고 표현했다. 강수연은 훗날 한 인터뷰에서 "그 당시만 해도 한국도 자국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내가 남한에서 왔는지 북한에서 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당시 이 영화제에는 '씨받이'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영화 360편이 출품됐고 이중 23편이 본선에 진출,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하지만 강수연의 수상은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현지에서 영화가 상영된 후 1000여명의 관객은 5분 동안 일어나 박수로 환호했다. 임권택 감독 작품인 '씨받이'는 양반가에 씨받이로 팔려간 여인의 비극을 그린 영
11년 전 오늘(2005년 9월8일),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인 첫 금메달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발달장애 수영선수 김진호(30·모티브비즈). 김진호(30·모티브비즈)는 당시 나이 19세(부산체고 2학년)로 체코에서 열린 세계장애인선수권대회 배영 200m에서 세계신기록(2분24초49)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국민들에게 장애를 넘어 진정한 인간승리가 무엇인지 보여준 그는 지금은 카페 사장님이 돼 여전히 세상과 소통하며 희망을 전달하고 있다. 김진호는 경기를 앞두고 한 방송사 프로그램 '진호야 사랑해'를 통해 큰 관심을 받았다.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 최정상에 도전한 영화 같은 김진호의 스토리가 알려지면서 발달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확산됐다. 특히 발달장애를 딛고 운동선수로 성장한 그의 이야기는 경제적 침체기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이 됐다. 처음 장애를 알게 된 것은 그가 3살이었던 1989년 9월. 김진호의 부모는 말이 유난히도 늦은 그를 데리고 대학병원에 갔다
'1급 이상 고위공직자 1167명 재산공개' 23년 전 오늘(1993년 9월 7일) 1급 이상 공직자(선출직 포함)의 등록재산이 일제히 공개됐다. 이제는 당연한 '공직자 재산공개'는 당시 관가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큰 파장(공직자 재산공개 파동)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전달 도입된 금융실명제에 이어 공직자 재산공개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았다. 김 대통령은 취임 이틀 뒤 자신과 가족의 재산 17억7822만원을 자진 공개하면서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김 대통령은 "공직자 재산공개로 일어나고 있는 불행한 일은 '공직자가 깨끗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교훈을 주고있다"며 "재산공개는 도덕성을 회복하는 의식전환에 있어 시끄러웠던 5공 청문회보다 몇백 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급력은 강력했다. '청렴한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는 정치·사회 전반으로 확산됐고 관련 내용은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했다. 특히 정부·여당 고위직 인사들의 자진공개가 잇따랐고, 일부 장관
'500여명→1만여명' 북한이 6·25전쟁을 일으킨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66년 전 오늘(1950년 9월 6일) '금녀의 구역' 군대에 500여명 규모 여군이 창설됐다. 이날 첫발을 내디딘 여군은 이제 약 1만명에 달하는 어엿한 국군 핵심전력으로 성장했다. 전군(육·해·공·해군)에 모두 배치된 여군은 이날 출범한 '의용군교육대'가 씨앗이 됐다. 1년 전인 1949년 구성된 첫 여자배속장교 32명 중 11명을 주축으로 전국에서 모인 여성 중 490여명이 한 달간의 고강도 훈련을 거쳐 군인으로 재탄생한 것. 앞서 여경 창설에 힘을 보탰던 '여장부' 김현숙 중위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게 여성 의용군을 허락받았다. 그는 모집 담화문에서 "여자만이 안일하게 국난을 방관하는 태도로 있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참여를 촉구했다. 인기는 뜨거웠다. 담화문 발표 후 20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고, 이들 중엔 혈서를 쓰는 여성도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의용군에 참여한 여성들은 교사
'세렌디피티'(serendipity) - 우연을 붙잡아 행운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몫. '피겨 여왕' 김연아는 자서전 '7분의 드라마'에서 피겨와의 만남을 이렇게 표현했다. 일곱 살 꼬마였던 김연아는 언니와 함께 엄마 손을 잡고 집 근처 새로 문을 연 과천 빙상경기장을 찾았다. 처음 신은 스케이트화가 낯설어 계속 빙판에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그것도 너무 즐거웠던 김연아는 엄마를 졸라 스케이트를 배우기로 했다. 우연을 행운으로 잡은 순간이었다. 정규 강습이 끝날 무렵 김연아를 가르쳤던 코치가 어머니를 찾아왔다. "연아에게 재능이 있습니다." 그 길로 개인 교습이 시작됐다. 김연아가 9살이 되던 해 1998년 일본 나가노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당시 한 외국 선수가 김연아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지금은 '피겨 전설'이 된 중국계 미국인 미셸 콴이었다. 김연아는 콴의 표정과 동작을 흉내냈다. 김연아는 끊임없이 연습했다. 자서전에선 "오늘 성공하지 못하면 집에 안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이를
107년 전 오늘(1909년 9월4일) 대한제국은 힘없이 간도를 빼앗겼다. 총칼을 앞세워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제국은 이날 남만주철도 건설권·푸순 탄광 채굴권과 2만1000㎢ 간도(백두산 북쪽 만주지역)를 맞바꾸는 조건으로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체결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간도 매각으로 '만주침략 비용마련'과 '전초기지 확보'라는 두 가지 실익을 얻게 됐다. 당시 미국과 러시아는 대한제국과 청나라간 영토 분쟁지역인 간도를 일제가 지배하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만주 정벌'의 야욕을 갖고 있던 일제는 한발 물러서는 듯하면서도 실익을 챙겼다. 일제는 영토와 대한제국 주민을 청나라에 넘기는 대가로 막대한 자금과 보급로 확보를 위한 철도선을 손에 쥐었다. 일제는 눈엣가시였던 독립운동 근원지를 자신들의 관리밖에 두는 것이 다소 께름칙했지만, 당초 경찰서(임시간도파출소) 대신 4곳에 영사관을 설치하는 조항을 포함시켜 항일 움직임도 예의주시했다. 대한제국의 반발은 무력했다.
75년 전 오늘(1941년 9월3일) 인류 역사상 가장 조직적이고 무자비한 대학살이 시작됐다. 이날부터 독일(현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선 5년간 유대인 등 30개국 400만여명이 독가스로 목숨을 잃었다. 나치가 세운 수용소 중 가장 큰 규모인 이곳은 1년 전 5월 나치 친위대 총사령관(하인리히 힘믈러)에 의해 폴란드 오시비엥침에 세워졌다. 나치는 이듬해 11월 3km가량 떨어진 곳에 두 번째 수용소를 세웠다. 또 1년 뒤에는 보조 수용소까지 만들어 3개를 운영했다. 초기엔 소련군 포로와 공산주의자들이 주로 처형됐고 집시, 정신장애인·동성애자·나치즘 반대론자 등 희생자는 다양했다. 노동력이 없는 노인과 여성, 어린이들도 학살 대상이었다. 과반수가 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선별돼 독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았다. 1942년 중반 나치는 유럽 내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홀로코스트'를 시작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가운데 거대 자본을 잠식한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거셌
1919년 9월2일 오후 5시. 조선총독부 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가 탄 기차가 서울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린 사이토 일행은 역 앞에서 환영행사를 마치고 관저로 향하는 마차에 올라탔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천지가 흔들렸다. 폭탄이 터진 것이었다. 거사 전인 이날 오전. 강우규 선생은 준비한 폭탄을 명주수건에 싸 허리에 단단히 맸다. 그 위에 저고리와 두루마기를 입으면 언제라도 손을 집어넣어 쉽게 폭탄을 꺼낼 수 있었다. 이날이 오기까지 강우규 선생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1910년 국권 피탈 후 만주로 건너간 그는 신흥촌을 건설하고 광동중학 등 6개 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사업에 헌신했다. 친형에게 한학과 한방의술을 익혀 한약방을 운영한 그는 상당한 부를 쌓았고 교육사업에 모든 재산을 쏟아부었다. 강우규 선생은 항상 마음 속에 안중근 의사와 같은 거사를 치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조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자진해 거사계획을 준비했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해 미국 뉴욕에서 탄 대한항공 015편은 알래스카의 앨커리지 공항에 잠시 멈췄다. 비행기에 연료를 채우기 위해서다. 비행기는 원래 타려고 했던 비행기였던 대한항공 007편 옆에 나란히 섰다. 대기실에는 007편을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두 어린 자매가 있었다. 이들은 유달리 살가웠다. 옆에 앉아 수화로 '사랑해'라고 말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한국에서 만나자'라는 말만 남긴 채 그렌펠 자매는 먼저 007편에 몸을 실었다. 한국 도착 후 충격적인 소식이 들렸다. 이 자매가 탄 비행기가 소련 상공에서 격추됐다는 것이다. 원래 타려고 했던 비행기라고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해졌다. 대기실에서 스쳤던 수많은 007편 탑승객 중 생존자는 단 1명도 없었다. 소련을 강하게 비판했던 미국 공화당 의원 제시 헬름스는 그의 동료 스티브 심즈, 캐롤 J 허바드 의원들과 함께 가까스로 죽음을 피했다. 33년 전 오늘(1983년 9월1일),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향
2000년 무렵, 한국사회에 신조어 하나가 등장했다. 뉴스에선 이 신조어와 함께 양복 입은 중년 신사와 교복 입은 여학생이 같이 있는 그림도 소개됐다. 일부 드라마나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이 신조어를 풍자하는 묘사들이 자주 나왔다. 이름하여 '원조교제'. 일본에서 유행해 한국으로 들어왔다. 일본에서 원조교제란 경제적으로 넉넉한 중년 남성이 여학생에게 경제적 지원이나 고가의 선물을 주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이 유행이 좀더 왜곡돼서 나타났다. 중년남성과 미성년자 사이의 성매매 성격이 강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만남의 수단은 주로 '폰팅'이나 '인터넷 채팅'이었다. 적발된 사례 중 한 청소년이 원조교제로 한달에 스무건 넘는 성매매를 한 사실도 확인됐다. 절반이 넘은 남성이 40대 이상이었고 이 중에는 회사원, 전문직, 공무원 등도 다수 포함됐다. 이들이 청소년들에게 제공한 돈은 6만원 안팎. 하지만 성매매를 한 남성이 적발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체로 벌금형을
하루 8시간. 일주일에 5일, 주당 40시간' 13년 전 오늘(2003년 8월 29일) 주5일 근무제(주 40시간 근무제) 단계적 도입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주 44시간이던 법정 근로시간이 4시간 줄고, 토·일이 휴일로 지정됐다.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던 한국은 선진국을 향한 삶의 질 향상에 한 발 다가섰다. 이날 법안 통과로 이듬해 7월부터 금융·보험업과 공공부문, 상시근로자 1000명 이상 대기업을 시작으로 업종·인력 규모에 따라 2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까지 2011년까지 총 6단계에 걸쳐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됐다. 임금수준은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종전 월차중심의 휴가제도를 연차(15일)로 개편했다. 당시 한국은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른 국가와 비교해 근로시간이 월등히 많았다. 논의 당시 주로 거론된 2000년 OECD 연평균 근로시간은 한국이 2474시간으로 미국(1877시간) 일본(1821시간) 등을 크게 웃돌았다. 주5일 근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 피살 직후 국회와 정부는 유신헌법 철폐를 위한 개헌 논의를 진행했다. 최규하 대통령은 민주적인 헌법 개정을 약속했고 정치적 억압도 완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12·12사태와 함께 등장한 신군부는 민주화 움직임을 후퇴시켰다. 폐지됐던 정보처가 부활했고 민주화 여론은 짓밟혔다. 대학가와 정치권에선 점점 권력을 강화하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경계했다. 1980년 5월부터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행동으로 이어졌다. 서울대 총학생회를 비롯해 전국 총학생회 회장단은 가두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대학생 10만명이 서울역에 결집하는 등 전두환 퇴진과 민주화 일정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고조됐다. 신군부에겐 시간이 없었다. 국회에서 대통령 직선제 등을 담은 민주적 개정안 작업이 끝났고 5월20일 본회의 통과만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신군부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빌미로 위기감을 조성하고 같은 달 17일 자정 비상계엄을 확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