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조직적 대학살…유대인·소련군 포로 등 400만여명 가스실서 희생


75년 전 오늘(1941년 9월3일) 인류 역사상 가장 조직적이고 무자비한 대학살이 시작됐다. 이날부터 독일(현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선 5년간 유대인 등 30개국 400만여명이 독가스로 목숨을 잃었다.
나치가 세운 수용소 중 가장 큰 규모인 이곳은 1년 전 5월 나치 친위대 총사령관(하인리히 힘믈러)에 의해 폴란드 오시비엥침에 세워졌다. 나치는 이듬해 11월 3km가량 떨어진 곳에 두 번째 수용소를 세웠다. 또 1년 뒤에는 보조 수용소까지 만들어 3개를 운영했다.
초기엔 소련군 포로와 공산주의자들이 주로 처형됐고 집시, 정신장애인·동성애자·나치즘 반대론자 등 희생자는 다양했다. 노동력이 없는 노인과 여성, 어린이들도 학살 대상이었다. 과반수가 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선별돼 독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았다.
1942년 중반 나치는 유럽 내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홀로코스트'를 시작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가운데 거대 자본을 잠식한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거셌다. 이에 나치의 지도자 히틀러는 유대인 말살정책을 펼쳐 대량학살을 지시했다. 유대인들이 전쟁 중이던 독일 국민들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정치적 희생양'이 된 것이다. 홀로코스트 당시 학살당한 유대인 600만명 중 4분의1가량은 아우슈비츠에서 독가스를 마시고 생을 마쳤다. 유대인 9000여명이 하룻밤새 사망하기도 했다.
독가스실은 일반적인 샤워실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학살 피해자들이 옷을 벗고 거부감 없이 이곳에 들어간 이유였다. 당시 사용된 독가스는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는 ‘치클론-B’로 알려졌다. ‘치클론-B’는 원래 수용소에 들끓는 이를 잡기 위한 살충제였다.
학살 피해자들의 시체는 소각로에서 한꺼번에 불태워졌다. 하루에 1500구에서 2000구의 시체가 소각됐다. 나치는 이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카펫과 가발을 만들기도 했다. 1945년 1월27일 아우슈비츠를 해방시킨 소련의 ‘붉은 군대’가 이곳에서 찾아낸 머리카락의 무게는 무려 7000kg이 넘을 정도였다.
수많은 희생자의 고통과 눈물이 묻힌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1947년 7월 폴란드 의회가 박물관으로 영구보존하기로 결의, 현재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 1979년에는 유네스코가 이곳을 세계유산을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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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 1월27일 아우슈비츠 해방 71주년을 맞아 나치가 저지른 만행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 행사가 유럽 곳곳에서 열렸다. '정상생활로의 귀환'이란 주제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일부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가 참석,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이어 지난 5월6일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150명과 유대인 학생, 이스라엘 의원 등 1만여명이 아우슈비츠에서 비르케나우 처형시설까지 3km 행진에 나서기도 했다. ‘살아 있는 자들의 행진’으로 불리는 이 행사는 역사교육 목적으로 1988년부터 매년 실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