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인 코리아 시즌2' 걸출한 악인 백기태 역 열연
선과 악 모두 욕망으로 삼켜버리는 욕망의 화신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두 얼굴의 악당 형상화

하나의 단어를 또박또박, 문장의 끝은 힘주어 반듯하게. 현빈의 말은 단정하고 단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결코 많은 말을 하지 않지만, 단어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모든 말에 뜻을 담으려 노력하는 듯 보인다. 데뷔 이후 많은 작품들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현빈의 본체는 그의 말투를 닮았다. 입 밖으로 나오는 많지 않은 말에서 분명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진중하고 힘 있는, 매듭을 분명하게 짓는 투명하고 정직한 말을 닮았다.
데뷔와 함께 잘생긴 외모로 늘 ‘완벽에 가까운 남자’, ‘로맨스의 남주’로 사랑받아온 현빈이 육중하고 냉혹한 얼굴로 시청자와 조우했다. 디즈니 ‘메이드 인 코리아’의 백기태는 현빈이 로맨스 스타의 완벽함을 깨고 어두운 균열을 드러낸 인물이다.

‘스타’라는 외피를 벗고 배우에 가까워지기 위해 부단히 오랜 시간 노력을 기울여온 현빈은 욕망으로 점철된 남자 ‘백기태’를 통해 영리하고 효과적인 변신을 선보였다. 현빈이 연기하는 백기태는 1970년대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며 부와 권력의 정점을 향해 질주하는 인물이다. 시즌 1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성공에 베팅한 남자는 지독하게 달려드는 적수 ‘장건영’(정우성)을 물리치고 권력의 정점에 오른다.
9년의 시간이 흐른 시즌2. 중앙정보부의 실세로 올라선 그는 마약을 제조해 일본에 넘기며 권력과 돈을 모두 쥐고 천하를 호령한다. 권력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제도에 부딪힐 때마다 백기태는 그 제도가 이미 자행하고 있는 폭력을 능숙하게 이용하는 것으로 대응한다. 작품은 부산 항쟁, 유신 정권, 10.26 사건 등 실제 역사를 그림과 동시에 그 시대의 중심을 관통하는 백기태의 삶을 담는다. 그리고 죄책감이나 망설임 없이 권력과 부를 향해 집요하게 움직이는 백기태를 통해 현빈은 그의 필모그래피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남성성을 폭발시킨다.

‘아일랜드’와 ‘내 이름은 김삼순’, ‘시크릿 가든’, ‘만추’ 등에서의 현빈은 사랑하나 부드럽지만은 않은 로맨티시스트였다. ‘친구, 우리들의 전설’ 동수과 ‘역린’의 정조, ‘공조’의 림철령, ‘창궐’의 이청, ‘협상’의 민태구로 이어지는 영화 속 인물들로 현빈은 단단한 몸과 절제된 표정, 과묵한 태도로 특유의 남성적 이미지를 쌓아올렸다
일련의 변화에도 현빈은 여전히 잘생기고 스타일리시한 ‘멋진 남자’였다. 북한 인민군 역을 맡은 ‘사랑의 불시착’, ‘공조’에서도 여성들의 마음을 훔치던 그가 조금 더 남성성이 강화된 ‘하얼빈’의 안중근에 이어 ‘메이드 인 코리아’의 백기태로 절제된 카리스마의 정점에 올라선다.

백기태는 그동안 현빈이 연기했던 남자들과 달리 정의보다 성공을 좇으며, 죄책감보다 생존을 앞세우며 목적을 향해 내달리는 욕망에 목마른 인물이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도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고, 영리하고 대담하게 돌진하는 이 남자는 선악의 판단조차 보류하게 만드는 악당이다. 현빈은 자신의 신념과 목적을 향해 누구보다 간절하게 움직이는 이 남자를 마냥 미워할 수 없게 만들어냈다. 빈곤과 차별의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아 야만의 시대에 권력의 꼭대기에 오른 기태를 결코 악인이라 비난할 수 없게 만드는 것도 현빈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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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아르의 어두움 속에도 뚜렷한 명암을 만들어내는 현빈의 반듯한 외모는 백기태를 우아하고 서늘한 악당으로 창조했다. 조각 같은 얼굴과 단정한 말투, 품격 있는 몸짓으로 시대의 걸출한 악인 백기태를 그려냈다. 현빈이 백기태를 통해 도달한 곳은 선과 악마저 자신의 욕망으로 삼켜버리는 한 남자의 서늘하고도 강렬한 얼굴이다.
정명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