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P',"盧.鄭'는 대리인 내세워···실무진 사전접촉 통해 어렵잖게 '합의문' 도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가 6일 오후 6시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첫 회동을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시작한다. 이에 따라 정치권과 국민들은 두 후보 간 역사적인 첫 회동에서 어떤 말들이 오고 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회동은 양 측의 첫 만남임에도 이례적으로 실무진이 아닌 후보가 직접 무릎을 맞대고 논의한다. 예상보다 더 진전된 결과물도 기대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단일화를 위한 첫 회동은 거시적으로는 후보 간의 정치적 가치와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미시적으로는 단일화 창구와 시기, 방법 등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중요하게 여겨진다.
단일화, 특히 야권 후보 간 연대 모색으로 정권을 거머쥔 경우는 우리 역사 상 두 번 존재했다.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 연합과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당시 후보의 단일화가 그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당시 자민련 총재는 대선 이전해인 1996년부터 양당의원 연석회의, 재보궐 선거 단일화 후보 선정 등을 추진하며 구체적인 단일화 예열 작업을 수행해 왔다.
본격적인 단일화 논의를 위한 첫 회동은 1997년 7월11일 여의도 63빌딩에서였다. 김 전 대통령이 소속된 국민회의의 한광옥 야권대통령후보단일화추진위원회 위원장과 자민련의 김용환 대통령후보단일화협상수권위원회 위원장이 양당 후보단일화 협상기구 첫 합동회의를 열고 단일 후보 논의에 착수했다.
30분 간 진행된 '상견례' 수준의 이 날 첫 회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으며 미리 준비한 합의문을 바탕으로 한 △후보단일화기구 합동회의는 양당 위원장이 합의하는데 따라 소집 △효율적인 협상을 위해 각 당대표 3~4인의 위원과 양당 간사를 추가한 단일기구 협의 △협상내용은 양당 위원장 공동 명의로 발표 등의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이 자리서 두 위원장은 '공동정권을 뒷받침하기 위한 내각책임제 권력구조 검토'에도 합의했다. 그러나 당시 단일화의 최대 쟁점이었던 내각제 개헌 협상의 구체적인 안에 대해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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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DJ측은 내각제 수용과 후보 결정을 한꺼번에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JP측은 내각제 당론 채택과 개헌시기, 단일화 방법 및 일정들을 먼저 합의하고 후보를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팽팽히 맞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후보는 이후 같은 해 10월 김 전 대통령이 김 전 총재의 자택을 방문해 담판을 지으면서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16대 대선이 열린 2002년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국민통합21의 정몽준 대선 후보의 단일화 협상 첫 회동은 후보 가 아닌 대리인을 우선 내세운 방식이었다.
2002년 11월 8일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민주당과 국민통합21 후보단일화협상단 이해찬 단장과 이철 단장이 만나 오찬을 겸해 3시간가량 협의을 진행, '공동발표문'이라는 결과물을 얻었다.
양 측의 공동발표문에는 △후보단일화 가급적 빠르게 종료 △합의내용 공동 발표 △후보 선정은 정책을 중심으로 한 TV토론으로 검증하되, 구체적 선장 방식은 조만간 착수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숨 막혔던 일주일을 넘긴 양 진영은 16일 각 후보가 만나 TV정책토론 심의와 여론조사 방법으로 대선 후보를 단일화 하기로 최종 결정하기에 이른다.
올해 18대 대선에서 문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를 위한 첫 회동은 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들 간의 의견 조율이라는 점에서만 공통분모가 존재할 뿐, 대리인이 아닌 후보가 직접 만난다는 점과 실무진 간 사전 접촉 없이 대화를 풀어 간다는 면에서 그 성격이 조금은 다르다.
서로 자신의 집 안팎에서만 단일화 군불을 피워온 두 후보의 첫 회동이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