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물가와 취업난이 이어지면서 청년층이 친구를 만나는 데 드는 비용까지 줄이는 이른바 '프렌드플레이션'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친구(friend)와 물가 상승(inflation)을 합친 프렌드플레이션은 물가 상승으로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 부담이 커지는 현상을 뜻한다. 외식과 카페, 술자리뿐 아니라 생일 선물과 각종 경조사비 등이 오르면서 청년들이 인간관계를 일종의 '비용'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가장 활발하게 인간 관계를 맺고 사회 생활을 하는 20~40대가 프렌드플레이션의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다.
구인·구직 플랫폼 알바천국이 지난 6월 Z세대(1990년대 후반~2010년 초반생) 601명과 M세대(1980년대 초반~1990년대 후반) 544명 등 1145명을 조사한 결과, Z세대의 93%와 M세대의 90.8%가 친구와의 만남이나 모임 비용을 부담스럽게 느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Z세대의 71.2%는 최근 1년 동안 친구 만남이나 모임 관련 지출을 줄였다고 했다. 64.6%는 일주일에 친구를 한 번도 만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친구를 한 번 만날 때 사용하는 비용은 주로 3만~5만원 수준이었다. 응답자의 약 3분의 1은 한 번에 5만원 이상을 지출할 때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식사비였다. 복수응답 기준 Z세대의 78.4%가 식사비를 꼽았고 커피·디저트비(40.1%), 주류비(29.7%), 생일·기념일비(25.8%)가 뒤를 이었다.
가파른 물가 상승이 청년세대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6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3.2% 올랐다. 친구와의 만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음식·숙박 물가는 2.7%, 오락·문화는 5.4%, 교통은 11.1% 각각 상승했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서울 지역 평균 외식 가격은 김밥 3869원, 삼겹살(200g) 2만1321원, 냉면 1만2692원, 삼계탕 1만8192원이다.
문제는 청년들이 단순히 '씀씀이'만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돈이 드는 만남을 거절하거나 참석 횟수를 줄이고, 생일·기념일을 서로 챙기지 않는 식으로 관계 자체의 빈도와 범위를 조절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카카오톡 생일 알림 기능을 해제하거나, 저장해 둔 친구와의 기념일을 삭제하기도 한다.
1인 가구의 사회적 고립 경험을 분석한 '청년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고립되는가'란 논문에서 취업준비생 A씨(25)의 사례가 소개됐다. 수험 생활을 했다는 A씨는 "사람 만나는 건 좀 사치라고 강박적으로 생각했다"며 1년 6개월 간 '고립'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수험 생활을 위해 관계를 끊었지만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더 악화됐다. 친구들도 더 이상 A씨를 찾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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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의 사회적 고립과 은둔 규모도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청년 은둔화의 결정요인 및 사회경제적 비용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9~34세 청년의 5.2%인 약 53만8000명이 은둔 상태인 것으로 추산됐다. 2022년 약 24만4000명과 비교하면 2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물론 이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미국 금융 플랫폼 셀프파이낸셜이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78.8%가 친구들과 어울릴 때 경제적 불안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돈을 둘러싼 갈등으로 친구와 거리를 두거나 관계를 끊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44.7%였다. 영국 학생사무국(OfS)이 학생 40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54%가 생활비 상승이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또 56%는 외식·외출 등 사회적 비용을 줄였다고 밝혔다.
인간 관계의 축소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 문제는 개인의 외로움을 넘어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 청년에게 친구와 지인은 정서적 지지뿐 아니라 취업과 사회생활에 필요한 정보,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망이다. 특히 이 같은 청년 고립은 경제 활동을 비롯해 결혼·출산 등 사회 구조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최재성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인간관계를 인위적으로 축소하고 있는 것"이라며 "관계 축소가 지속될 경우 사회적으로도 부정적인 영향이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