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돈 버는 해외진출] <2> (上)

"미국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한국 주식 중개는 1992년 NH투자증권 뉴욕법인 설립 때부터 이어온 사업입니다. 올해는 투자자 저변과 한국 기업에 대한 관심도가 과거와 차원이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금융중심지 뉴욕에서 한국의 밸류업 프로그램과 개별 기업의 세부 현황을 궁금해하는 해외 투자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올해 외국인 통합계좌(옴니버스 어카운트)가 열리면서 가만히 있어도 일주일에 최소 한두번은 '해외 큰손'의 문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머니투데이가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미국 뉴욕 현지에서 만난 금융투자업계 전문가 5명은 모두 올해 K자본시장의 위상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갖고, '미래 투자처'인 한국 기업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원한다고 전했다.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은 뉴욕에 터를 잡은 우리나라 증권사들에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가 됐다. 단순히 주식을 중개하는 데서 나아가 투자자들의 K자본시장 공부, 기업 탐방까지 조율하는 이른바 'K자본시장 투자 허브'로 성장할 도약기를 맞은 것이다.
전 세계에서 자본시장이 가장 발달한 금융중심지 뉴욕에 1992년 문을 연 NH투자증권 뉴욕법인의 진상원 법인장은 "현장에서 느끼는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진 법인장이 가장 크게 체감하는 변화는 투자자 저변 확대다. 미국 기관뿐 아니라 캐나다, 인도 등 여러 나라의 연기금과 기관투자자들이 한국 시장 투자를 위해 NH투자증권 뉴욕법인을 찾았다.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의 범위는 넓어지고 깊이는 깊어졌다. 진 법인장은 "예전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표 대형주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같은 반도체 섹터 안에서도 개별 기업을 더 찾으려는 수요가 강해졌다"며 "그 과정에서 중형주까지 투자 범위가 넓어졌다"고 했다. 반도체 일변도였던 관심 섹터도 로보틱스, 헬스케어, 금융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뉴욕 현지의 K기업 투자 방식도 달라졌다. 해외 큰손 투자자들은 이제 한국 기업과의 미팅을 주선해 달라고 하고, 국내 산업 동향과 기업 전망에 대한 리서치(연구 보고서)를 요청한다. 진 법인장은 "한국 시장을 단순한 트레이딩(주식거래) 시장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투자할 시장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라며 "이런 흐름은 미국 기관뿐 아니라 유럽·아시아 지역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K자본시장의 인프라와 정책 방향을 알려는 투자자도 많아졌다. 해외 큰손들은 한국 시장 투자를 결정할 때 정부의 자본시장 정책 방향과 기업의 밸류업 프로그램도 상당히 중요하게 살펴본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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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묵 한국거래소 뉴욕사무소장은 "우리나라 시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기관투자자가 우리나라 A기업 투자를 결정할 때 그 회사의 밸류업 프로그램, A기업과 연관된 다른 기업들에 대한 정보까지 문의한다"며 "가만히 있어도 이처럼 자세한 정보를 달라는 연락이 주 1~2회 이상은 온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외국인 통합계좌가 열리면서 해외 대형 금융투자기관들의 문의는 더 많아지고 내용은 더 자세해졌다. 거래소가 각 사 문의에 맞춤형 답변을 해야 할 정도다.
우리나라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와 우려도 공존한다. 지금까지는 시장 지수와 개별 기업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 중심이었다면, 이제 투자자들은 기업의 이익체력을 높이는 밸류업을 기대하고 있다. 신 소장은 "기업의 내재가치를 높이는 것을 정책 목표로 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며 "한국 기업의 자본 효율성을 높이고 ROE(자기자본이익률) 목표치를 제시해 달라고 건의하는 투자자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높아진 K자본시장 위상에 맞춰 뉴욕에 진출한 국내 증권사들도 올해를 새로운 도약기로 삼고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IB법인 KIS US는 인수금융에서 나아가 ABS(자산유동화증권) 등 구조화금융 시장에 진출했다. 올해 6월 미국 당국의 인가 절차를 마친 키움증권 뉴욕법인은 10월 중 미국 주식 직접 중개 서비스를 시작한다.


세계 금융중심지 뉴욕에 둥지를 튼 증권사 현지법인들이 높아진 K자본시장 위상을 지렛대 삼아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다. 주요 증권사 뉴욕법인들의 목표는 저마다 달랐지만 "현지에서 체득한 노하우로 한국 고객에게 더 나은 상품·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공통의 목적이 있었다.
증권사 뉴욕법인들은 한국 개인투자자도 미국 비상장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문을 열고, 현지 구조화금융 시장에 진출해 전문성을 쌓고 있다. 현지법인의 수익원을 다각화하는 동시에 증권사의 사업 영역 자체를 넓히려는 시도다.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만난 NH투자증권(26,250원 ▲200 +0.77%)·한국투자증권·키움증권(255,500원 ▼1,500 -0.58%) 뉴욕법인들은 저마다 '새로운 도약기'를 맞아 사업영역 확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1992년 문을 연 NH투자증권 뉴욕법인은 중장기적으로 IB(기업·투자금융) 수익 기여도를 50%까지 높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NH투자증권 뉴욕법인은 '전통 사업'인 주식 중개에서 나아가 미국 기업 직접 투자라는 신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 9일에는 미국 투자금융회사 PEAK6와 손잡고 현지 자본시장 인프라, VC(벤처캐피털)와 핀테크 기업 투자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진상원 NH투자증권 뉴욕법인장은 "올해 상장한 스페이스X와 상장 예정인 앤트로픽 사례에서 보듯 미국 비상장기업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이 대단하다"며 "뉴욕법인이 유망한 기업에 직접 투자하면 여기에 관심 있는 국내 WM(자산관리) 부문 고객에게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법인이 투자자로서 최신 재무제표·실사보고서 등을 직접 살펴보고 전달하면 정보 비대칭을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실제 미국 투자시장에서는 개인투자자에게 비상장주식을 중개하는 회사와 유통 플랫폼들이 새로 생기고 있다. NH투자증권 뉴욕법인도 예비 IPO(기업공개) 기업에 대한 투자 수요를 반영해 AI 기술기업, 핀테크 기업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진 법인장은 "금융의 판을 바꾸는 핀테크, AI 기업에 대한 투자 접근성을 높이고 직접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며 "링크알파(LinqAlpha) 같은 현지 AI 금융 인프라 기업과 협업해 성장성 있는 거래를 발굴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 NH투자증권의 강점 분야로 꼽히는 부동산·인프라 금융에서도 '뉴욕의 성공 사례'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뉴욕법인이 부동산 펀드에 LP(유한책임투자자)로 투자하는 방식도 검토하고 있다. 진 법인장은 "비상장주식과 대체자산을 포함해 더 좋은 솔루션을 제공하려면 PI(자기자본투자) 역량을 높이고, 이를 기반으로 본사 WM 고객 서비스도 강화하는 게 목표"라며 "좋은 미국 자산을 발굴·투자하는 미주 지역 투자 플랫폼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의 뉴욕 IB법인 KIS US는 구조화금융 시장에 발을 내디뎠다. KIS US는 다른 증권사 뉴욕법인과 달리 주식거래를 직접 중개하지 않는 IB 전문 법인이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인수금융 분야에서 성과를 내며 지난 8월까지 약 18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하지만 올해는 인수금융 시장 환경이 녹록지 않다. AI(인공지능)가 SW(소프트웨어) 산업을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로 인수·합병이 줄었고, 기존 대출·계약을 연장하는 거래가 많아지면서 KIS US의 기회도 좁아졌다.
이런 가운데 미국 내 은행산업 규제가 강해지면서 구조화금융 시장에 진입할 기회가 열렸다. 우연광 KIS US 법인장은 "ABF(자산담보금융)는 은행 중심의 시장인데 규제 강화로 은행이 대출채권을 구조화해 보유하기가 어려워졌다"며 "은행의 대출채권을 사들인 뒤 고객이 투자하기 좋은 RMBS(주거용 주택저당증권) 등의 형태로 구조화·상품화하는 ABF 사업에 진출했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회사 KKR에 따르면 미국 사모 ABF 시장 규모는 2022년 7066조원에서 2024년 8290조원으로 늘었고, 2027년에는 1경464조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KIS US는 글로벌 대체투자 운용사 캐니언파트너스, 일본 다이이치생명 등과 합작법인 CAP를 세워 양질의 대출채권을 사들이고 있다. 이를 MBS 등 상품으로 구조화해 판매·관리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
KIS US의 궁극적 목표는 IB·구조화금융이 가장 발달한 미국 자본시장에서 전문성과 경험을 쌓아 한투증권 고객의 다양한 수요에 부응하는 것이다. 우 법인장은 "20~30년 후에는 우리나라 자본 규모가 더 커지고 고객이 원하는 상품도 다양해질 것"이라며 "미국 현지 금융사들과 경쟁하면서 IB·구조화금융 전문성을 갖춰 직접 거래도 소싱하고 한국 고객의 다양한 투자 수요에 부응하겠다"고 말했다.
전통 사업에 새로 뛰어드는 증권사도 있다. 키움증권은 10월 중 미국 주식 직접 중개 서비스 출시를 목표로 막바지 점검이 한창이다.
키움증권은 1990년대 설립된 현지 증권사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지난 6월 증권사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국내 리테일 주식거래 1위인 키움증권이 뉴욕법인을 두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해외 주식 서비스를 혁신하기 위해서다. 이윤구 키움증권 뉴욕법인장은 "일례로 소수점 주식거래 서비스가 가능해졌는데, 미국의 다른 증권사를 통해 주문을 처리하면 이런 새 서비스 도입이 늦어질 수 있다"며 "현지법인이 있으면 상황에 맞게 즉각 시스템을 고도화해 신규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키움증권 뉴욕법인의 서비스 출시로 국내 증권사 간 경쟁도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각 증권사가 미국 주식 중개를 내재화하면서 개인투자자의 혜택과 편의를 높이는 선의의 경쟁이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