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당신 친구가 범인으로 몰린다면?

[광화문]당신 친구가 범인으로 몰린다면?

박창욱 생활경제부장
2010.12.02 07:47

#. 1973년 8월 영국의 한 휴가지 대형 호텔에서 큰 불이 났다. 2차 대전 이후 영국에서 일어난 가장 큰 화재로 나중에 기록될 정도였다.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숨졌다.

그런 가운데서도 가족 단위로 놀러온 사람들의 생존율이 혼자 놀러온 사람들에 비해 월등하게 높았다. 독일 언론인 프랑크 쉬르마허의 책 '가족-부활이냐 몰락이냐'에 나오는 이야기다.

화재 당시 가족 단위 투숙객들은 패닉 상태에서도 서로를 찾으려 애썼고, 결국 함께 화재 현장을 탈출할 수 있었다. 가족 간에 형성된 굳건한 유대와 믿음이 극한 상황에서 소중한 목숨을 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

꼭 화재 같은 극한 상황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물질 우선의 현대 사회에서 주변의 소중한 사람과 함께 쌓아가는 좋은 추억과, 그 기억들이 엮이며 만들어지는 믿음의 끈은 우리 삶을 구원해 줄 밧줄 역할을 해 준다.

#. 얼마 전 '골든 슬럼버'라는 일본 영화를 봤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일본 총리가 거리 행진 도중 암살을 당하면서,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암살범으로 몰린 청년 아오야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거대 권력에 의해 증거가 조작된 상황에서 아오야기는 경찰에게 목숨을 위협당하며 쫓긴다. 방송에선 연일 아오야기에 대해 '정신이 이상하다'는 등 온갖 의혹을 만들어낸다.

그런데도 부모와 친구, 직장동료 등 주위 사람들은 아오야기가 범인이라고 전하는 TV뉴스를 전혀 믿지 않는다. 오히려 누명을 썼다고 생각하고 아오야기가 도망칠 수 있도록 돕고 응원한다. 그들은 아오야기가 얼마나 진실하고 착하며, 남을 배려하는지를 오랫동안 봐왔던 사람들이었다. 그러기에 권력과 TV가 만들어낸 허상의 이미지에 속지 않았다.

어쩌면 아오야기가 주위 사람들에게 받는 그 믿음은 아오야기 스스로가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아오야기는 심지어 도망자 신세로 쫓기는 도중에 만난 사람들까지도 순박하게 신뢰할 정도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사람이 모두 성실하지 못하더라도 자기만은 홀로 성실하기 때문이며,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사람이 모두 속이지 않더라도 자기가 먼저 스스로를 속이기 때문이다." 채근담에 나오는 구절이다. 재미있게 영화를 보는 내내 부끄러운 마음이 내 머리 속 한쪽 구석에 똬리를 틀었다.

#. 압축 성장을 이룬 한국 사회는 경제 이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해선 매우 무관심한 편이다. 과장해서 표현하면(어쩌면 과장이 아닐수도 있다) 오직 숫자로 측정되는 효율과 경제적 성과만을 '절대 가치'로 여긴다.

하지만 경제란 그 사회 구성원의 삶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사회가 어떻게 이뤄져 있는가 하는 구조 문제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건강한 경제를 위해선 건강한 사회가 추구해야 할, 보이진 않지만 근원적인 가치를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

그런 가치 가운데 한국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뭘까. 바로 믿음 아닐까 싶다. 나는 너를 믿지 못하고, 그러니 너도 나를 믿지 못한다. 기업가와 노동자, 여와 야, 보수와 진보가 모두 그렇다.

미국의 사회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 홉킨스대 교수는 저서 `트러스트'에서 선진국과 후진국 차이는 바로 신뢰의 차이이며, 신뢰 기반이 없는 나라는 사회적 비용이 급격하게 커져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 한국 사회가 뼛속깊이 새겨야 할 지적인 셈이다.

사회 구성원간의 믿음은 경제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동력이다. 그래서 후쿠야마 교수의 조언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하나의 지배적인 문화적 특성, 즉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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