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친구 남편은 억대 연봉인데…"

[광화문]"친구 남편은 억대 연봉인데…"

박창욱 생활경제부장
2010.12.23 07:51

#. "옆 부서 김 부장네 와이프는 아침밥 꼬박꼬박 챙겨 준다던데, 도대체 당신은 뭐야. 남편이 출근하든 말든 잠이나 자고."

"나보다 잘 난거 하나 없는 내 친구 영희는 남편 잘 만나 떵떵거리고 삽디다. 남편이 부잣집에 억대 연봉이라 강남 50평대 아파트에 살고. 남편 잘못 만난 내 팔자는 이게 뭔지."

여느 집 부부싸움에서 종종 나오는 레퍼토리인데, 아주 다행스럽게도 내 아내는 이런 식의 비교는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술 좀 그만 먹어라", "거실에 누워 TV 좀 그만 봐라" 같은 잔소리만 할 뿐이다. 아내에게 말은 안 하지만 속으론 고마울 따름이다. 직장생활 하기도 힘든 판에 최소한 비교당하는 스트레스 하나 정도는 덜어주니 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아니,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 아내를 다른 집 와이프랑 비교할 마음 자체를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기자한답시고 허구한 날 술 먹고 늦게 들어가는데, 같이 살아주는 것만 해도 그게 어딘가. 내 마누라가 기분 상하면 밥 못 얻어 먹는건 바로 나다. 나랑 살아줄 것도 아닌 다른 집 마누라와 내 마누라를 비교하는 그런 바보짓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 2008년작 영화 '님은 먼곳에'를 최근에 볼 기회가 있었다. 영화 제목처럼 그야말로 님은 먼 곳에 있다. 남편은 아내에게 말도 없이 베트남 전쟁터로 가버렸다. 대학생인 남편에겐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하지만 집안의 영으로 고향 처녀인 아내와 억지로 결혼했다.

남편은 통 옛 연인을 잊지 못한다. 당연히 아내에게 마음을 붙이지도 못한다. 그러다 사고를 치고 결국 전쟁터로 휩쓸려 생사를 넘나든다. 남편은 정말 어리석다. 가질 수도 없는 사랑에 사로잡혀 하나뿐인 목숨을 사지로 내몰았다. 어머니에게 3대 독자로서, 어찌 됐든 남편으로서 위치도 함께 내던졌다.

반면 아내는 남편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듣지 못하는데도 계속 남편 면회를 간다. 가부장제하에서 압력이든, 오기였든 이유야 어쨌든 간에 말도 없이 떠난 남편을 찾기 위해 그 먼 베트남까지도 찾아간다. 비록 남편보다 배운 것은 없지만 차라리 아내가 훨씬 낫다.

잡히지 않는 사랑만을 쫓다가 자기를 통째로 잃어버리고 세상에 휩쓸린 남편과 달리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가수로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했으니까. "니 사랑이 뭔지 아나"며 사랑 타령하던 남편보다는 정작 아내에게 진짜 사랑이 찾아올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다. 그 사랑의 상대가 마음을 고쳐먹은 남편일수도 아니면 다른 사람일수도 있겠지만, 아내에겐 다가오는 사랑을 확실하게 잡을 의지와 힘이 있어 보였다.

#.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올 한 해도 나름 열심히 살긴 했다. 하지만 행복하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40대 가장으로서 불안감일까. 그런 것 같다. 억대 연봉 받는 잘 나가는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일까. 그것도 맞는 것 같다. 배 나오고 머리 빠지면서 없어지는 남자로서 매력에 대한 아쉬움일까. 뭐 그것도 대충 비슷한 것 같다.

생각하다보니 참 바보스럽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이고, 내게는 없는 것이고,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여태껏 `소중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니. 비록 고액 연봉은 아니나 일자리가 있고, 귀여운 아들이 있고, 남과 비교 안 하고 아침식사까지 주는 마누라도 있는데. 이만하면 크게 부러울 것 없는 인생이다.

행복이 뭐 별 건가. 주어진 내 일에 충실하고, 내 가족, 내 친구, 선·후배 동료와 잘 지내면 대충 행복의 9할은 채워지는 것이 아닐까. 나머지 1할은 뭐냐고. 그 답까진 아직 얻지 못했다. 어쨌든 다가올 새해는 내게 주어진 것에 좀 더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해 본다. 내년 연말쯤에 난 지금보다 좀 더 행복해져 있을 것이다.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 링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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