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산업특성 무시한 재무약정

[기자수첩]산업특성 무시한 재무약정

김지산 기자
2011.05.31 06:31

이달 초 전경련 주최로 열린 경제정책위원회에서 이상균 대한항공 부사장의 '직설적인' 건의가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참석했는데, 그는 작심이라도 한 듯 질의응답 시간에 손을 들어 채권단의 행태를 꼬집었다.

이 부사장은 무엇보다 재무개선 약정을 위한 재무구조 평가에 항공산업의 특성이 감안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항공기를 구입하려면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대한항공이 올해부터 2014년까지 10대를 도입하는 A380기만해도 대당 가격이 4000억원 넘는 등 투자규모가 큰 탓이다.

그러나 채권 금융기관들은 재무약정에서 졸업하지 못한 대한항공에 대해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비행기를 사도록 압박한다. 지난해 영업이익 1조1192억원, 순이익 4683억원을 기록한 대한항공이 자기자금으로 신형 항공기를 구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다.

해운사도 마찬가지다. 현대상선을 계열사로 둔 현대그룹이 재무개선 약정 체결에 강하게 반발하며 주거래은행과의 거래 단절을 불사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물론 투자를 줄이고 내실을 다진 뒤 발주하면 될 일 아니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항공업계가 고급 기종을 신속히 도입하고 해운사는 효율 좋은 대형 선박에 적기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계속기업'으로 생존하려면 차입을 통해 비행기든 선박이든 발주를 해야 한다.

이 부사장은 "2009년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하기로 한 항공기가 70여대인데 재무개선 약정으로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외 금융기관들이 국내업체들의 제약요인을 간파하고 이자율을 높이려 든다고도 했다.

재무약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폐해도 적잖다. 한 해운사 관계자는 "기업을 키우려 배를 많이 발주하면 자산 규모로 재무개선약정 대상에 들어가게 된다"며 "정작 이들 대형 회사는 멀쩡한데 재무약정 대상에 들지 않은 소형 회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회사가 재무약정의 틀에 갇혀 꼼꼼히 봐야 할 부실을 놓친 게 아니냐는 얘기다. 아울러 기업의 성장 기회 상실 역시 금융권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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