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부회장들의 굳은 표정 의미는

[기자수첩] 부회장들의 굳은 표정 의미는

이상배 기자
2012.01.26 15:36

지난 16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 16층 회의장. 굳은 표정을 한 4명의 중년 신사들이 차례로 걸어 들어왔다.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 김용환 현대·기아차그룹 부회장, 강유식 LG그룹 부회장, 김영태 SK㈜ 사장이었다. 이들이 테이블이 앉은 지 2분여가 흐른 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이 들어왔다. 서로 악수를 나눈 5명은 곧장 한줄로 서서 사진촬영을 했다.

밝은 표정의 김 위원장과 달리 부회장단은 포토라인에 서서도 환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강 부회장 만 애써 웃음을 지어보인 정도였다. 다시 테이블에 앉은 뒤 김 위원장이 발표문을 읽기 시작했다. 발표문이 낭독되는 약 5분 동안 4명의 부회장단은 기자들의 사진 플래시 세례를 받으면서도 입을 굳게 다문 채 먼 곳을 바라보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기자들을 모두 내보낸 뒤 시작된 회의는 불과 30분도 채 되지 않아 끝났다. 4대 그룹을 대표하는 4명은 곧장 자리를 떴다. 김 위원장이 홀로 회의장 밖에 서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4대 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자제 자율선언'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번 '자율선언'는 골자는 그동안 4대 그룹내 계열사들이 별다른 경쟁입찰없이 수주해온 물류, 시스템통합(SI), 광고, 건설 물량들을 중소기업들에게도 개방하도록 스스로 노력한다는 것이다. 핵심은 '강제'가 아니라 '자율'로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보보안, 신속성, 효율성 등의 문제가 걸리다 보니 모든 물량을 다 경쟁입찰에 부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또한 무 자르듯 단순하게 어디까지는 경쟁입찰로 하라는 식의 뚜렷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도 어렵다. 공정위가 매분기 공시를 통해 자율선언 준수 여부를 점검하겠다고 했지만, 객관적 기준도 없이 제재를 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이런 자율선언은 기업의 자율적인 의지가 없이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16일 부회장단의 표정은 이번 선언이 나온 배경을 보여준다. 영화 '완득이'의 대사 한구절이 귓가를 맴돈다. "야간 '자율'학습을 면제해주고 말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 야간 '타율'학습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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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 기자

머니투데이 정치부장입니다. △2002년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2011년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MBA) 졸업 △2002년 머니투데이 입사 △청와대, 국회, 검찰 및 법원, 기재부, 산자부, 공정위, 대기업, 거래소 및 증권사, IT 업계 등 출입 △2019∼2020년 뉴욕특파원 △2021∼2022년 경제부장 △2023년∼ 정치부장 △저서: '리더의 자격'(북투데이), '앞으로 5년, 결정적 미래'(비즈니스북스·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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