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인하 정책 '흔들'···"석유공사 공급가격 현물시장보다 비싸"

11일 오후 찾은 금천구 시흥동의 형제주유소에는 황량한 기운이 감돌았다.
알뜰주유소의 상징인 스마일 간판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진입로에 드리워진 쇠사슬과 대비되며 오히려 을씨년스런 모습이었다.
서울 지역 알뜰주유소 1호점인 형제주유소가 지난달 말 경영난을 견디다 못해 문을 닫았다. 형제주유소가 개점 6개월여 만에 문을 닫으면서 정부의 알뜰주유소 정책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형제주유소는 지난 2월10일 서울 지역 최초의 알뜰주유소로 높은 관심 속에 문을 열었다. 리터당 2200원이 넘는 국내유가의 고공행진이 계속되면서 정부는 유가안정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었고 알뜰주유소는 정부가 전격적으로 내세운 핵심 정책 중 하나였다.
특히 서울은 전국에서 기름값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알뜰주유소 1호점은 향후 알뜰주유소 정책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곳이었다. 알뜰주유소 1호점이 들어선 금천구는 반경 2km 안에 20여개의 주유소들이 밀집한 지역으로 알뜰주유소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김재형 형제주유소 대표는 지난 2월 알뜰주유소 전환 당시 "주변 주유소와의 가격경쟁 때문에 알뜰주유소를 통한 가격경쟁력 확보가 절실했다"고 전환 이유를 밝혔다. 알뜰주유소 전환 전 15년 이상 자영주유소(무폴주유소)로 운영하면서 절감한 브랜드파워 부족도 또 하나의 이유였다.
출발은 좋았다. 개점 초기, 동시에 5명이 넘는 직원을 써도 일손이 부족할 정도로 손님이 밀려들었다. 개점하고 한 달이 지난 후 알뜰주유소를 찾았을 때만해도 기름을 넣기 위해 차들이 길게 늘어선 모습을 목격할 수 있을 만큼 성업 중이었다.
손님으로 북적이던 알뜰주유소가 불과 6개월만에 문을 닫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알뜰주유소 운영자들은 비싼 공급가격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전환 당시 리터당 100원을 싸게 팔 수 있도록 기름을 공급해주겠다고 한 정부의 약속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월부터 광진구에서 알뜰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정덕수 용마주유소 대표는 "전환 당시 공급물량을 석유공사에서 50%, 기타 물량 50%로 하기로 계약했는데 석유공사로부터 공급받는 물량보다 현물시장에서 사오는 기름이 오히려 더 싼 상황"이라며 "계약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싸서 팔지도 못할 기름을 사오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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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공사의 공급가격이 기대만큼 저렴하지 못한 이유는 석유공사에 기름을 공급하는 기존 정유사들이 주 고객인 폴사인(상품표시) 주유소의 반발을 우려해 알뜰주유소와 일반 주유소 간 공급가격에 큰 차이를 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폴사인 주유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삼성토탈의 공급량을 확대할 방침이다. 현재 월 3만5000배럴로 알뜰주유소 공급물량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토탈의 공급량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기존 정유사에 대한 알뜰주유소의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석유공사가 하반기 중 20만 배럴의 휘발유를 직접 수입해 알뜰주유소에 공급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정부가 알뜰주유소 확대를 위해 매년 수십억원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알뜰주유소 폐업은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올해 알뜰주유소 운전자금 보증 및 외상거래 자금, 시설개선 자금 지원 등에 79억원의 예산을 할당하고 지금까지 예산의 73%인 57억원을 집행했다.
김문식 주유소협회장은 "올 들어 7월까지 폐업한 주유소 수는 174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124개)보다 40%이상 증가했다"며 "주유소 과포화로 일반 주유소의 고사가 시작된 상황에서 앞으로 경영난으로 인해 문 닫는 알뜰주유소 역시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