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note]
더벨|이 기사는 11월20일(07:31) 자본시장 미디어'머니투데이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한국에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프로젝트 펀드라는 것이 있다. 투자대상을 미리 정해놓은 뒤에 유한책임투자자(LP)의 돈을 받아 조성한 펀드를 말한다. 미국이나 홍콩, 유럽 등지에서는 생소한 형태다. 홍콩에서 근무하는 IB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 벤처캐피탈이나 PE가 조성하는 펀드는 투자대상을 정하지 않은 블라인드(blind) 펀드를 지칭하는 것"이라며 "블라인드 펀드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프로젝트 펀드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다"고 말했다.
희한한 일이다. 왜 한국에서만 이런 기이한 펀드가 생겨난 것일까. 이는 한국 LP 구성의 특수성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한국의 주요 LP들은 정책금융공사와 국민연금, 한국벤처투자 등 연기금 혹은 정부 소유의 기관이 주를 이룬다. 해외 LP들이 민간 자금인 것과는 대비된다. 이들 기관은 자금의 성격이 국민의 세금과 비슷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수익률이 나오지 않을 경우 감사원의 질타를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LP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부분이다. 이 때문에 LP들은 투자원금을 까먹는 것을 최악으로 간주한다.
문제는 이런 고민에도 불구하고 국내 LP들이 아직 무한책임투자자(GP)에 대한 믿음이 크지 않다는 데 있다. 국내 투자시장의 역사가 이제 10여년에 불과해 제대로 된 트랙레코드(track record)를 내놓지 못한 탓이 크다. 해외 시장과 다른 부분이 여기에 있다. 2000년대 중반 투자시장이 호황을 맞이한 시기, GP들은 두둑한 수익률을 LP에게 안겨줬다. LP에게 거액의 수익을 안겨줬으니 GP에 대한 믿음도 자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해외 GP의 관리보수율이 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국내 시장에서 LP들에게 당장 해외수준의 담대함을 요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이런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프로젝트 펀드라는 기형아다. GP들이 투자를 검토 중인 기업을 LP에게 먼저 보여주고 펀드레이징을 제안한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확실한 투자기업이 설정된 상태이기 때문에 경영윗선으로부터 결재를 받기도 수월해진다. 투자심의위원회를 개최해도 겉으로는 GP에게 최종적인 투자 결정을 맡겨 놓았지만 실질적으로는 LP가 모든 투자과정에 참여하는 구조다. 걱정이 많은 LP가 이것저것 참견은 하지만 나중에 투자가 실패해도 GP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좋다.
하지만 프로젝트 펀드가 장점만을 갖춘 것은 아니다. 우선 LP 모집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나는 단점이 뚜렷하다. 아직 자금이 모이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투자를 검토 중인 업체와 협상을 할 경우 협상력이 크게 떨어진다. 협상 도중에 또 다른 블라인드펀드나 전략적 투자자(SI)가 끼어들 경우 배제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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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수익에 머물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도 있다. 프로젝트 펀드는 대부분 PE 성격의 투자로 건당 투자금액이 최소 300억 원 이상이다. 주요 투자대상이 성장잠재력을 지닌 중견기업에 국한된다. 투자형태가 대부분 프리 IPO 투자 혹은 코스닥 상장기업의 메자닌 투자가 주류를 이룬다. 투자원금을 까먹을 확률은 낮지만 그렇다고 잭팟 수준의 수익률을 기대하기 어렵다. 높은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고 수익률을 추구하겠다는 LP라면 흥미가 떨어지는 구조다.
프로젝트 펀드는 GP의 독립적인 투자결정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형태는 아니라고 본다. 장기적으로는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 프로젝트 펀드가 점차 자취를 감추는 것이 긍정적일 것이다. 하지만 국내 자본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프로젝트 펀드의 결성을 무조건 비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부 및 연기금 의존도가 높은 국내 LP 구성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이런 기현상을 막을 방도도 마땅치 않다. 가장 자연스러운 해결책은 국내 GP들이 성공적인 트랙레코드를 쌓는 길이다. 이 길만이 LP들로부터 떳떳이 펀드 운영에 대한 독립성을 보장받고 관리보수율을 인상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결국 칼자루를 쥔 것은 GP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