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구조조정 중이라...상황이 나아지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방문을 위해 전화를 돌린 한 장비기업 관계자가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해왔다. 이 업체를 포함해 올 하반기 들어 국내 장비 업계에 사상 초유의 구조조정 한파가 불어 닥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디엠에스와 에버테크노, 에스엔유프리시젼, 미래산업 등은 임직원 수(9월 말 기준)가 연초보다 30% 이상 줄었다. 신성에프에이, 유비프리시젼은 인력이 20% 안팎으로 감소했다. 에스에프에이와 케이씨텍, 탑엔지니어링, 엘아이지에이디피 등은 연초대비 10% 정도 줄었다.
이달 들어 구조조정에 돌입한 주성엔지니어링은 연초대비 30%까지 인력을 감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참엔지니어링 등은 현재 희망퇴직자를 받고 있다. 이렇듯 장비기업 상당수가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50%까지 임직원 수를 줄이거나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장비 업종은 2000년대 들어 국내에서 대표적으로 성공한 분야로 꼽힌다. 지난 10년 동안 삼성과 LG,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기업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공격적인 설비투자에 나서면서 장비기업들이 큰 수혜를 봤다. 이 기간 동안 다수 장비기업들이 수천억대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도약했다. 현재 증권시장에 상장한 장비기업만 100여 곳에 이른다.
과거 인텔을 중심으로 한 미국 반도체 산업이 전 세계 시장을 주도하면서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와 램리서치 등 자국 내 반도체 장비기업들도 동반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올랐다. 일본 역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가 급성장하면서 도쿄일렉트론과 히타치, 시바우라 등 일본 장비 업체들도 일찌감치 대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마찬가지로 2000년대 들어 삼성과 LG, SK하이닉스 등이 전 세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국내 장비기업들 역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로 에스에프에이가 지난해 7534억원 매출을 기록하면서 국내에서도 1조원 장비기업 탄생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하지만 지난해와 달리 올해 장비 업계는 사상 최악의 한파가 불어 닥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유럽 재정위기 등 글로벌 경기침체 영향으로 삼성과 LG 등 대기업이 설비투자를 대폭 축소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특히 액정표시장치(LCD) 산업이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로 접어들면서 LCD장비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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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국내 대기업 설비투자에 철저히 의존하며 성장해온 장비기업들은 이제 생존의 기로에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당수 장비기업들이 2∼3년 전부터 거래선 및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러한 노력이 안착하기도 전에 불어 닥친 한파로 시련을 겪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 상당수 기업들이 중소기업을 벗어나 중견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장비 업종. 장비기업들이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 다시 대기업으로 도약하는 성공적인 선순환구조 사례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장비수주를 재개하고 성장궤도에 재진입하게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