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호암상 사회봉사상 수상 이종만 김현숙 부부…32년간의 장애인 사랑

처음부터 자녀는 낳지 않기로 약속했다. 내가 낳은 아이와 다른 아이가 넘어졌을 때 어느 한쪽을 먼저 일으키는 상황이 올까 겁이 났다. 자녀 대신 장애인들과 더불어 살았다. 열매를 주지는 않았다. 열매에 물을 주고 채집할 수 있는 터를 만들어줬다.
제23회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수상한 사회복지법인 유은복지재단 이종만(57) 원장과 김현숙(54) 직업재활교사는 그렇게 살았다. 지난 10일 경북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 673번지 '나눔 공동체'. 인적이 드문 길목을 따라 올라간 그곳에서 이들 부부를 만났다.
두 사람과의 만남은 "이렇게 주목받을 일이 아닌데"라는 첫 마디로 시작했다. 이들은 호암상 최초 부부 수상자가 됐다는 사실이 아직도 꿈만 같다며 수줍게 웃었다.
"지금 당장 도움을 주는 게 다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장애인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32년간 공들인 결과물이 나눔 공동체입니다."
◇교회 농아반 봉사활동이 32년 '사랑나눔'의 시작=이들의 만남은 교회에서 시작됐다. 당시 목사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었던 신학생인 이 원장과 특수학교 교사인 부친의 영향을 받은 김 교사가 교회에서 농아반을 위한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첫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1981년부터 안동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들의 자립 및 자활을 도왔다. 이 원장은 "장애인도 일을 하면서 떳떳한 사회 일원으로 충분히 살아갈 자격이 있다"며 "다만 그 기회나 환경이 없어 힘들뿐"이라고 말했다.
나눔 공동체에선 몸에 좋은 무공해 새싹채소 22종을 재배한다. 공동체 전체 규모 1만3223m²(4000평)의 4분의 1 수준인 3140m²(950평)이 새싹과 어린잎 채소를 재배하는 작업장이다. 하루 새싹 생산량만 2.5톤에 달한다.
작업장에서 일하는 전체 인원 77명 중 53명은 장애인이다. 청각장애부터 지적장애, 뇌병변장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이 함께 모여 일한다. 씨를 뿌려 발아시키고 물을 주며 키우는 전반적 업무를 함께 한다.
이들의 손으로 키운 새싹이 벌어들인 지난해 매출만 23억3000만원. 올해는 벌써부터 지난해 같은 기간 매출보다 20% 증가했다. 늘어나는 매출만큼 이곳에서 일하는 장애인의 수를 늘리는 것이 이들의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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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은 "기계에만 의존하지 않고 사람이 직접 키우니 품질 좋은 새싹이 나오는 것"이라며 "장애인과 함께 정성 들여 깨끗하게 키운 새싹들이 사랑받는 것을 보면 흐뭇하다"고 말했다.
이곳은 일반 기업과 다르다. 김 교사는 "기업은 이윤 추구가 목적이지만 우리는 무형의 가치를 제공한다"며 "사회의 불량품으로 여겨지던 장애인들에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보람"이라고 강조했다.
◇IMF 때의 생이별…다시 만나기로 약속=처음부터 이 같은 성과를 낸 것은 아니었다.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었다가 빚더미에 앉아 해외 도피까지 고민한 시절도 있었다.
"수상 소식을 듣고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어요. 32년간 주저앉거나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떠올랐어요. 힘든 순간을 견디며 함께해준 아내와 장애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곳에서 4㎞ 떨어진 허름한 건물을 빌려 봉제공장을 운영한 것이 나눔 공동체의 시작이었다. 13년간 안동의 한 특수학교에서 일하던 김 교사의 퇴직금까지 보태어 봉제공장을 마련했다.
이 원장은 단추 구멍을 만들고 김 교사는 미싱을 돌리며 장애인 86명과 일했다. 장애인들에게 빠른 손놀림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서툰 솜씨로 원단을 망치기도 여러 번. 하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 연장 근무를 하는 게 일쑤였다.
차츰 옷감 다루기가 익숙해질 무렵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가 닥쳤다. 주문 물량이 하루 1700장에서 3분의 1도 안 되는 500장으로 줄었다. 눈물을 머금고 장애인 36명을 내보내고 최소인력으로 공장을 운영했다. 나머지라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에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했다.
이 원장은 "언젠가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모이자는 약속을 잊지 않았다"며 "정말 가슴 시린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공장을 운영하며 진 빚만 해도 3억7000만원. 그는 "우리가 잘 살기 위해 진 빚이었다면 마음은 덜 아팠을 것"이라며 "어려움을 함께 나누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기대와 현실은 달랐다"고 토로했다.

이후 약 10년간 힘든 시기는 계속됐다. 그러다 2009년 이들 부부가 해외로 떠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고민할 무렵, 일이 풀렸다. 삼성패션 등 유명 브랜드에서도 일감이 들어왔다. 2002년에는 빚을 다 갚고 떠나보낸 장애인들을 다시 불러들여 법인을 만들었다.
"하지만 봉제일은 장애인들에게 무리였습니다. 예전처럼 대량 생산이 아닌 소량으로 다양한 옷을 만드는 일을 하려니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장애인들이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고민했어요."
순살 돈가스부터 쓰레기 종량제 봉투 생산까지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러다 2005년 새싹 재배를 시작했다.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2005년부터 2007년 사이에는 사기를 여러 차례 당해 좌절하기도 했다.
한 번은 대구지방검찰청으로부터 장애인을 이용해 돈벌이를 한다며 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는 아픔도 겪었다. 조사 결과 사실무근임이 밝혀졌지만 이들 부부에게는 또 한 번의 힘든 시기였다.
김 교사는 "그래도 다시 해보자고 뛰어 들었더니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도 왔다"며 미소를 지었다. 2008년부터 사업은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2009년 처음으로 13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그래도 '함께'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가장 행복한 순간을 꼽으라는 질문에 이 원장은 "지금 이 순간"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함께한 장애인들이 자립에 성공해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사무실에 모아둔 사진 앨범들을 펼쳐 보였다. 수많은 앨범에는 이 원장이 장애인 자녀들의 결혼 주례에 선 사진만 해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김 교사는 "장애인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봤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낯을 가리며 움츠리고 있던 장애인들이 공동체 생활에 적응해 소통할 때 더 없는 기쁨을 느낀다고.
이들은 다음 달 31일 서울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상금 3억원과 순금 메달을 받는다. 상금으로 무엇을 할 계획인지 묻자 "아직 생각을 못했다"면서도 "가장 목마른 것은 장애인들의 동선에 맞춘 작업장 마련"이라고 대답했다.
현재 작업장은 이전 봉제공장 작업장을 개조해 만든 곳이라 새싹 재배 동선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 이곳을 장애인이 재배하기 쉬운 동선으로 바꿔 더욱 많은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이 이들 부부의 목표다.
물론 단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꿈은 아니다. 최소 30억원 상당의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 이들 부부는 조바심을 갖지 않고 차근차근 장애인들의 터전을 계속 꾸려갈 계획이다.
이들 부부는 사회복지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장애복지는 'For'(~를 위해)가 아닌 'With'(함께)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공동체 이름을 '나눔'으로 지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 동안 장애인 복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해결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어요. 거창한 구호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장애인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가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들은 "장애인들이 우리 공동체를 통해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우리의 꿈"이라며 "장애인 복지의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우리가 대단한 삶을 산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대한민국 안동 땅에 가면 의미 있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김 교사 역시 "장애인들이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조금의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며 웃음 지었다.
한편 호암상은 고(故)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인재제일과 사회공익정신을 기리는 상이다. 1990년 이건희삼성전자(210,500원 ▲14,000 +7.12%)회장이 제정해 올해 23회째를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