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동북아 조선허브 꿈꾸던 STX다롄… 조선업 불황, 자금경색으로 가동 중단

"작년만 해도 여기가 전쟁터처럼 분주했는데, 이제는 개미새끼 한 마리 안 보이네…"
지난 3일 중국 다롄(大連) 창싱다오(長興島)에 위치한 STX다롄 조선소 육상조립장. 한 협력업체 대표는 골리앗 크레인 5대 등 세계 최대 설비의 공장이 가동 중단된 현장을 보며 탄식했다.
선박용 특수페인트를 공급하는 다른 협력업체 대표는 안벽에 세워져 있는 40만 톤 규모의 철광석 운반선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1억 달러짜리 저 배 공정이 이미 85%나 진행돼서 완성을 앞두고 있는데, 자재부족으로 몇 달째 저 상태로 있어요. 우리 페인트가 얼마나 들어 갔는데···"
◇ STX 무리한 투자, 멈춰선 골리앗 크레인= 랴오닝성(遼寧省) 정부가 STX를 위해 건설했다는 다롄에서 창싱다오간 6차선 도로는 운행하는 차량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의도 면적의 1.7배에 달하는 550만㎡(170만 평) 부지에 들어선 조선소 역시 인적이 드물었다. STX다롄 조선소가 4월부터 사실상 가동중단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재계 서열 13위 STX그룹이 2007년 설립한 다롄조선소는 출범 당시만 해도 안팎의 기대를 모았다. 세계 최대 크루즈 건조회사 아커야즈(현 STX유럽)를 인수하는 등 기세등등했던 STX는 다롄조선소에 1조7000억 원을 쏟아 부었다. '한국-중국-유럽' 3각 생산 네트워크로 세계 최고의 조선사가 되겠다는 구상이었다.
랴오닝성과 다롄시는 세제혜택과 주택건설 등 STX 지원에 열성을 보였다. 다롄에서 1시간 떨어진 작은 어촌 창싱다오를 2020년까지 국제적인 경제무역지구로 만든다는 청사진에 STX의 투자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STX도 현지 인력을 2만5000명이나 채용하는 등 적극 화답했다. 다롄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교민은 "조선소가 세워질 때만 해도 다롄 시내가 STX 직원들로 흥청거렸고, 교민뿐 아니라 중국인들도 기대가 대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STX다롄의 장밋빛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선박수주가 급격히 줄어든 데다, STX 본사의 지원이 끊기면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차입액이 눈덩이처럼 불어 1조8000억 원에 달하자 채권단은 신규자금 지원을 차단한 것이 결정타가 됐다.

◇자금수혈 기대하지만… 멀고먼 정상화= STX 채권단은 조선해양·엔진·중공업 등 조선분야 계열사는 신규자금을 투입해 살리고 팬오션(해운), 에너지 등 비조선 계열사 및 해외 계열사는 매각할 방침이다. STX다롄은 자금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공상은행 등 중국 채권단은 한국 금융기관이 나서지 않을 경우 자신들도 지원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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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구가 되어줄 매각협상도 여의치 않다. 중국선박공업집단(CSSC) 등 중국 조선사들의 STX다롄 인수설이 나오면서 한국에서는 기술유출에 대한 우려까지 제기됐다. STX가 최근 2년간 해양플랜트 4척을 건조하는 등 중국 업체들이 보유하지 못한 첨단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경기가 워낙 불황인데다 STX다롄의 덩치가 커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STX다롄 고위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이 STX다롄의 해양부문을 인수할 생각은 있지만 조선, 엔진 분야까지 일괄 인수하는 데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박수주 중단, 자금경색, 매각협상 부진 등 3중고에 빠진 STX다롄은 40여 명에 달하던 한국 임원 중 30명을 정리하는 등 자력회생을 시도하고 있다. STX다롄 고위 관계자는 "중국 채권단과 10억 위안(한화 1800억 원) 규모의 운영자금 지원 문제를 협의 중"이라면서 "조선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는 만큼 강도 높은 자구노력과 함께 운영자금이 조기에 지원된다면 회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자금수혈이 이뤄져도 STX다롄의 회생을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근본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 협력업체 대표는 "STX가 중소형 조선사인 대동조선을 인수해 출범한 만큼 고급인력이 부족해 생산현장의 문제점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며 "설비만 최신식일 뿐 생산성은 현저히 떨어진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