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승객과 좁은 공간에서 계속 있을 때 힘들어...무조건적인 고객중심주의도 힘들어
"승무원을 하면서 제일 힘든 점 중의 하나는 진상승객과 좁은 공간에 계속 같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피할 곳도 없고, 10시간이 넘는 동안 계속 웃으면서 그 진상을 받아주고 있으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죠."
항공사에서 일하는 승무원의 말이다. 겉으로 화려하고, 젊은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한 승무원직의 이면에는 ‘감정노동’이 숨겨져 있다. 특히 ‘땅콩리턴’ 사태처럼 거부할 수 없는 오너의 자녀들이 항공기를 탈 때면 스트레스는 최고점에 달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15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발표한 ‘감정노동의 직업별 실태’에 따르면 항공기 객실승무원이 감정노동을 가장 많이 수행하는 직업이다. 이어 홍보 도우미 및 판촉원, 통신서비스 및 이동통신기 판매원 등이 뒤를 이었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r)라는 용어 자체가 처음 사용된 것이 바로 승무원이다. 미국의 여성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는 1983년 ‘관리된 마음’(the managed heart)라는 책에서 미국 델타항공사의 승무원들에게 ‘감정노동’이라는 것을 확인, 개념화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감정노동은 △여성 △30대 이하 연령층 △민간 기업에서 일하는 직업인들이 감정노동을 많이 수행한다. 대한항공 항공운송사업 분야의 여성근로자의 근속연수가 9.6년 밖에 안 되는 것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여성 승무원들이 이 조건에 부합한다.
평소 승무원들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규제하고, 승객을 대하면서 원래의 감정을 숨긴 얼굴 표정과 몸짓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 고객중심주의를 표방하며 나온 매뉴얼은 과잉친절로 점철돼 있어 승무원을 얽매는 족쇄가 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땅콩리턴’ 사태도 이런 과도한 매뉴얼에서 비롯됐다. 이번에 문제가 된 매뉴얼의 견과류 서비스 부분을 보면 ‘견과류를 원하는 승객에게 갤리에서 버터볼에 담아 준비해 칵테일 냅킨과 함께 음료 왼쪽에 놓는다’라고 자세히 나와 있다.
대한항공의 한 직원은 "승무원의 서비스가 잘못됐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모두 외우고 있기가 힘들다"며 "매뉴얼이 자주 바뀌고, 노선과 좌석 클래스마다 다르기 때문에 모든 조항을 세세하게 알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인 진상승객도 한번 겪고 나면 스트레스가 극심한데, 오너의 딸이 매뉴얼을 들고 소리쳤을 경우를 생각하면 끔찍하다"며 "사무장은 항공기에서 내리고, 해당 승무원은 조 전 부사장의 눈에 안 띄는 곳에서 떨면서 10시간 넘게 비행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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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미소 짓는 승무원들에게는 특히나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증후군은 겉으로는 미소를 짓고 있지만 속으로는 우울증과 무기력감 등 정신적 어려움과 함께 두통, 불면증 등 육체적 고통을 수반한다.
업계 관계자는 "무조건적인 ‘고객중심주의’를 표방하며 근로자들에게 사과를 강요하거나 일단 참는 것을 요구하는 기업 분위기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승무원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