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과 청년실업 고통의 주범은 ICT혁명?

노동개혁과 청년실업 고통의 주범은 ICT혁명?

이병찬 기자
2015.09.25 08:00

[숨고르기]현재 ICT혁명은 과거 산업혁명 과도기와 비슷한 상황

[편집자주] 변동성이 점점 커지는 금융경제 격변기에 잠시 숨고르며 슬기로운 방향을 모색합니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3일 공개한 대국민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55%는 정부의 노동개혁이 '별 효과가 없을 것' 이라고 보고 있다. 이는 노동시장의 문제가 임금피크제 같은 정책의 문제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며,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따른 체념적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미 2000년대 부터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삼팔선(38세 퇴직)·사오정(45세 정년)·오륙도(56세까지 다니면 도둑) 같은 유머가 횡행하면서 고용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해결은 커녕 악화될 가능성 마저 커지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 7월 발표한 ‘미래이슈분석보고서’에서 저출산·초고령화 사회, 불평등 문제, 미래세대 삶의 불안정성을 10년 후의 최우선 이슈로 꼽는 것만 봐도 고용과 노동 문제가 악화 일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박근혜정부의 후반기 최우선 국정 과제로 ‘노동개혁’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위하여 최저임금인상, 근로시간단축, 임금피크제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기업은 물론 노동계 공히 마뜩잖다. 최저임금인상은 빈곤층 복지증대의 긍정적 측면과 기업부담증가로 인한 일자리감소의 부정적 측면이 상치되고 있으며, 또한 근로시간단축도 일자리 확대 효과와 생산성 감소 효과가 부딪치고, 임금피크제는 정년보장 문제와 실질소득감소 문제가 서로 갈등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노동개혁방안은 사회구성원의 고통과 파이(pie)를 나누는 대증(對症) 치료이지 고통의 총량을 줄이거나 파이를 키우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기는 어렵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조’하거나 기존 일자리의 확대를 ‘혁신’하는 원인(原因) 치료가 필요하다.

문제는 원인 치료를 위한 창조와 혁신 활동의 효과가 반노동적이라는 데 있다. 생산성과 효율성의 급격한 증가는 신규고용 창출은 최소화하면서 기존노동 대체는 최대화한다. 반면에 창조 혁신 기업의 가치는 기존 전통 기업의 가치를 훨씬 초과한다. 인터넷으로부터 비롯되기 시작한 ICT혁명은 이를 여실히 입증한다.

최근 미국 ICT기반 벤처기업중에 가치평가 1위(8월기준 510억 달러, 한화 60조 원)를 달리는 우버(Uber)가 편의성에다 운전직 고용확대의 기대감까지 주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세계의 주요 자동차 메이커는 물론 구글과 애플도 앞다투어 내놓는 ‘자율(무인)자동차’는 수년안에 우버 서비스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 무인자동차로 사라질 일자리가 신규 창출 일자리보다 훨씬 많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역시 ICT기반의 글로벌 숙박알선 스타트업으로 255억 달러(8월기준 30조 원)의 가치평가를 받고 있는 에어비앤비(Airbnb)는 임직원수가 고작 1600명(2월기준)에 불과하여 전통적 숙박업에서 고객유치활동을 위해 필요로 했던 무수한 인원들을 대부분 실업자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한편, 그 어떤 노동파괴적 기술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은 제3의 산업혁명이라 불리우는 3D프린팅이다. 이미 의류, 무기, 식품, 자동차, 건설, 바이오·제약, 우주산업 등 주요 산업분야에서 시제품이 나오고 있다. 멀지않은 장래에 전통적인 제조방식을 전면적으로 대체하는 개인제조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

일일이 예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전면적이다. 전자상거래의 유통산업개편, 인터넷뱅킹에 의한 금융산업재편, 드론(drone)에 의한 물류산업변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에 의한 지식산업의 혁명 등 시시각각 벌어지고 있는 모든 첨단 산업변화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ICT가 대체하는 것과 연결돼 있다.

이 모든 것은 지금 실업의 고통에 허덕이는 청년들이 장년이 되기 전에 생활화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ICT혁명을 주도하는 기업과 산업에 속해 있지 않는 이상 고용안정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 GNR(Genetics, Nanotech, Robotics)기술까지 더해지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갈 가능성도 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복지와 분배의 확대, 노동개혁의 요구는 이런 ICT 혁명이 초래하고 있는 미래의 불안에 대한 본능적 자기방어 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서 개인의 생존 문제와 국가의 안위 문제로 발전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미 징조는 보이기 시작했다. 2009년 9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구호 아래 경제 불안과 불평등에 불만을 가진 고학력 청년 30여명이 시위를 벌이면서 전세계로 확산된 일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경제위기를 빠뜨린 수백만 달러의 고액연봉자인 월가의 CEO에 대한 불만이지만, 근원적으로는 ICT의 집중으로 벌어진 부의 양극화에 대한 불만 표출이자, 앞으로 다가올 세대간의 갈등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급기야 2010년12월 튀니지에서 시작된 청년들의 반정부시위는 이른바 '아랍의 봄(Arab spring)'으로 불리우며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번졌고 일부 국가는 정권교체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금 이 시각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는 시리아 난민 문제도 '아랍의 봄'이 촉발한 시리아 내전에 기인하고 있다.

이는 기득세력의 부정부패와 빈부격차, 청년실업 등이 주된 원인이지만 석유로 대표되는 전통산업이 붕괴하고 ICT산업으로의 패러다임이 이동되는 과정에 생기는 마찰적 갈등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상황이 산업혁명 초기인 19세기와 흡사하다. 산업화·기계화로 누적된 고용 맟 임금 감소, 실업증가, 빈부차 확대를 견디지 못하고 수공업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수기 시작한 모습의 데쟈뷰이다(러다이트운동).

그렇다면 21세기의 청년들이 ICT혁명을 거부할 수 있을까? ICT혁명은 우리 모두가 원하던 것이었고 이미 그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거부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수수방관할 수는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의 천재 미래학자이자 구글엔지니어링의 이사로 있는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그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에서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특이점을 2045년으로 예측한다. 인류역사의 과학기술 발전 속도를 계산할 때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 시점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은 인간이 기술의 지배를 받는 우울한 미래가 아니라 인간과 기술이 하나가 되어 지능과 지성으로 가득차게 되는 희망의 미래라는 것이다. ‘로봇이 100년내 인간을 지배한다’고 주장하는 스티븐 호킹이나 ‘인공지능은 악마의 소환’이라고 걱정하는 엘런 머스크 같은 비관론자와는 정반대로 희망을 얘기한다.

지금 우리가 고민하는 노동개혁의 갈등과 청년실업의 고통은 ICT혁명 과정에서 겪는 과도기적 상황으로 봐야 한다. 정보와 기술을 선점한 창의적 집단에 의해 소득과 부의 불균형이 초래되는 현상은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서 인간과 산업이 상호 튜닝하면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현상인 것이다.

당장은 임금피크나 근로시간단축 등과 같은 고육지책의 방법으로 현실문제를 타개할 수 밖에 없지만, 궁극적으로는 ICT혁명이 우리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원동력이자 탈출구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산업혁명이 그랬던 것처럼, ICT혁명으로 시작된 문제는 ICT혁명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과도기적으로 발생하는 불평등과 편중현상은 사회적 나눔과 정치적 합의로 풀어 나가면서 동시에 모든 정책적 역량과 창조적 노력을 ICT혁명의 가속화에 집중한다면 지금의 노동개혁에 수반되는 고통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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