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줄었다고 내년 예산 깎고 인원 줄인다니…"

"밥값 줄었다고 내년 예산 깎고 인원 줄인다니…"

산업1부, 정리=임동욱
2016.10.27 05:44

[청탁금지법 시행 한달-기업 관가 표정]"기업활동 위축 피해는 기업들에… 대외 예산 더 써야"

청탁금지법 '김영란법' 시행을 하루 앞둔 27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 한 음식점에 '김영란법 메뉴'가 붙어있다.
청탁금지법 '김영란법' 시행을 하루 앞둔 27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 한 음식점에 '김영란법 메뉴'가 붙어있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한 달째를 맞았다. 산업계는 우리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김영란법의 위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기업들은 '사회관행의 선진화'라는 긍정적 효과는 분명 있지만, 내수위축 및 소통의 단절, 업무의 비효율성 등 각종 부작용에 대한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대기업들은 일제히 사내 내부 규정을 바꿨다. A사는 사내 접대비 규정을 고쳐 식사는 무조건 1인당 3만원 이하로 하도록 했다. 공직자 등과의 골프 등 교제비용은 접대비로 처리하지 못하도록 개정했다.

A사 관계자는 "법 하나로 우리의 일상생활이 바뀐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법 시행 초기 '시범 케이스'가 되지 않기 위해 기업은 더욱 '보수적'이 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기업들은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긍정적 효과로 무엇보다 불필요한 접대가 줄었고, 이에 따라 경비 절감 효과가 있었다는 점을 꼽았다. B기업 관계자는 "최근 한달 간 저녁 약속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승진 축하란이나 부고 조화 등도 안 하게 되면서 임원 누구 명의로 어떤 등급의 꽃을 보내야 할 지 고민할 필요도 없게 됐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홍보팀 등이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기존 업무 대신 자체적인 자생력을 갖추기 위한 콘텐츠 중심으로 일하는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긍정적인 변화다. C기업 홍보팀 관계자는 "내부에서 김영란법 시행으로 홍보팀 업무가 크게 줄어든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게 사실"이라며 "우리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기업의 홍보, 대관 등 대외 업무 담당자들은 내년도 관련 예산 삭감을 요구하는 재무팀과의 '힘겨루기'에 최근 진땀을 빼고 있다. D기업 홍보 관계자는 "접대비 등을 비롯해 홍보 관련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고민"이라며 "접대 비용 등이 줄어 든다고해서 광고 등 전체 홍보 예산을 손대려는 것은 현실을 잘 모르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대면 접촉이 어려운 현재 상황에서 홍보가 필요한 기업들은 광고홍보비라도 더욱 늘려야 할 상황인데, 단순히 '밥값'이 줄었다고 예산을 깎겠다니 난감하다는 하소연이다.

기업들은 대외 접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외 업무 부서 담당자들은 '네트워킹'이 사라졌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공직자 등에게 법에서 정한 3만원 이하의 식사를 접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 E기업 관계자는 "법이 정한대로 접대를 하면서도 상대방에게 결례가 되지 않는지 신경이 쓰인다"며 "물론 상대방도 법을 알고 있지만 찜찜하다"고 털어놨다.

더 큰 고민은 공직자 등이 기업과의 접촉을 아예 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관계자는 "기업이 공무원을 만나는 것에 대해 안 좋은 시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아예 기업을 안 만나려는 것은 재계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안타까워 했다.

국내 상위그룹에서 대관업무를 총괄하는 한 고위 임원은 "요새 (공직자 등과) 겨우 차만 마시고 지낸다"며 "식사는 엄두를 못 낸다"고 말했다.

마케팅, 홍보 활동이 주요 업무인 수입차 임포터들은 '일상적 경영활동'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볼멘 소리를 내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홍보를 위한 시승 행사가 전면 중단됐기 때문. 최근 주요 미디어에서 신차 시승기를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도 이때문이다. 고충이 높아지자 한국수입자동차협회는 회원사들과 법적 검토 등을 마친 뒤 업계 공동 가이드 라인을 마련해 다음달부터 시승 행사를 재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김영란법을 구실로 기업활동이 위축되면 가장 큰 피해는 우리 상공인들이 보게 된다" 고 지적했다.

지난 6일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가 '김영란법 시행으로 인한 내수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공동성명서를 발표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경제 6단체는 "내부 전반에 걸쳐 소비흐름의 단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자칫 우리 경제가 회복의 방향성을 잃고 장기 부진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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