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의 뚝심, '英 자존심' 롤스로이스도 움직였다

한화의 뚝심, '英 자존심' 롤스로이스도 움직였다

더비(영국)=안정준 기자
2019.11.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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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롤스로이스 영국 더비 항공엔진 공장 가보니...

롤스로이스 영국 더비 공장에서 엔지니어들이 항공엔진 검수를 하고 있다./사진제공=롤스로이스
롤스로이스 영국 더비 공장에서 엔지니어들이 항공엔진 검수를 하고 있다./사진제공=롤스로이스

지난 5일(현지시각) 영국 중부 더비시에 위치한 롤스로이스 항공엔진 생산공장. 경력 20년 이상의 엔진 장인들이 '하늘 위 호텔'로 통하는 초대형 항공기 A380의 심장을 한땀 한땀 맞춰가고 있었다. 100% 수작업을 기본으로 각 공정마다 수차례 검수를 거치는 생산 현장은 천천히, 확고하게 돌아가는 대형 시계태엽 같았다. 100년 넘는 시간 한결같이 명품엔진을 토해낸 더비는 영국의 자존심이다.

이날 더비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세바스찬 레쉬 민수항공엔진 총괄 부문장과 워릭 매튜 구매 사업부장, 앤디 그리즐리 터빈 사업부장 등 롤스로이스 최고 경영진들이 신현우 사장을 필두로 이곳을 방문한 한화의 항공엔진 제조 계열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1,175,000원 ▲59,000 +5.29%)(이하 한화에어로) 경영진을 맞이했다.

신현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장(오른쪽)과 앤디 그리즐리 롤스로이스 터빈 사업부장이 10억달러 규모의 항공기 엔진부품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사진제공=한화에어로스페이스
신현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장(오른쪽)과 앤디 그리즐리 롤스로이스 터빈 사업부장이 10억달러 규모의 항공기 엔진부품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사진제공=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이들은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규모 항공기 엔진부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한화에어로가 롤스로이스와 맺은 단일 기준 최대 규모 계약이었다.

계약을 마친 신 사장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신 사장은 "그동안 롤스로이스에 엔진 케이스 등을 공급했다면 이제 엔진의 핵심인 터빈 관련 부품을 공급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납품의 질적 도약이 계약 규모 이상이라는 뜻이었다. 흡입-압축-폭발 과정이 진행되는 터빈은 섭씨 1400도 이상의 고열을 견뎌야 한다. 이 때문에 터빈 구성 부품 제작에는 머리카락 굵기 100분의 1인 미크론 단위 오차까지 관리 가능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항공 엔진기술의 정수인 셈이다.

'영국의 자존심'을 뚫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신 사장은 "롤스로이스와는 30년 넘게 협력했지만 터빈만큼은 난공불락이었다"고 말했다.

롤스로이스는 글로벌 항공엔진 업계에서 진입 장벽이 가장 높은 곳이다. 국내에는 최고급 승용차 브랜드로 알려졌지만, 사실 GE(제너럴일렉트릭), P&W(프랫 앤 휘트니)와 함께 3대 항공기 엔진 제조사로 더 유명하다. 롤스로이스는 연간 196억달러(약 22조60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항공엔진 부문에서 40년 이상 공력을 갖춘 한화에어로는 이미 기술력에 있어서만큼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F-5 제트엔진 생산을 시작으로 음속돌파 항공엔진까지 축적된 기술력은 이제 위성발사체 사업으로 뻗는다. 롤스로이스로부터도 지난해 '최고 파트너상'(Best Supplier Award)을 수상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롤스로이스 엔진의 핵심부를 뚫기 위해서는 '기술 플러스 알파'가 필요했다.

한화에어로는 '글로벌 서플라이체인 구축'에서 답을 찾았다. 창원공장의 검증된 기술력을 베트남으로 이식해 원가경쟁력을 더했다. 일각에서 초정밀 기계제조는 베트남에서 힘들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밀어붙였다. 김승연 그룹 회장의 항공산업 육성 의지가 뒷심이 됐다. 김 회장은 2022년까지 항공·방산사업에 4조원을 투자한다는 로드맵을 바탕으로 베트남 진출을 전폭 지원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당초 반년은 걸려야 롤스로이스 엔지니어의 인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던 베트남산 제품에 한 달 만에 'OK' 마크가 붙었다고 한다. 이날 계약을 맺은 한화에어로의 터빈 부품은 전량 베트남에서 공급된다. 한화에어로는 지난해 말 가동을 시작한 베트남 사업장에 롤스로이스 전용 라인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워릭 매튜 롤스로이스 구매 사업부장이 회사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제공=한화에어로스페이스
워릭 매튜 롤스로이스 구매 사업부장이 회사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제공=한화에어로스페이스

워릭 매튜 롤스로이스 구매 사업부장은 "단순 비용절감은 쉽지만, 기술에 인력관리를 더하는 것은 어렵다"며 "한화에어로의 베트남 기지는 큰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더비에서의 계약은 한화에어로의 글로벌 도약으로 뻗는다. 매튜 사업부장은 "이날 터빈 부품 계약은 미래를 향한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으로 한화에어로가 롤스로이스와 장기적으로 엔진 국제공동개발사업(RSP: Risk & Revenue Sharing Program)을 진행할 토대를 닦았다는 평도 나온다. '개발-생산-애프터서비스(A/S)' 3단계로 이어지는 RSP는 비용과 위험을 분담하면서 이익을 공유하는 글로벌 항공엔진 업계 사업모델이다. 독일 MTU와 영국 GKN 등 소수의 선진시장 업체들만 수행이 가능할 만큼 진입장벽이 높다. 한화에어로는 우선 3대 항공엔진 제조사 중 P&W와 RSP를 진행 중이다.

신 사장은 "RSP 분야에서 2025년까지 글로벌 톱5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라며 "앞으로의 투자 핵심은 RSP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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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준 특파원

안녕하세요. 국제부 안정준 특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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