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선 왜 나이키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나오면 안 됩니까? 아시아 디이밍(넘버원)은 중국 기업 아닙니까?"
항저우 야윈회(아시안게임) 후원사인 한 중국 스포츠용품 기업 관계자는 회사의 목표에 대해 위와 같이 말했다. 이 기업은 올해 마케팅 비용의 상당 부분을 항저우 야윈회 후원에 투입했다. 야윈회를 통해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한다는 포부를 달성하기 위해 임직원이 총동원됐다. 이 관계자는 "아시아 최대 스포츠 행사의 영향력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24시간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게임이 자국 기업의 거대한 광고판이 됐다. '중국 기업은 내수용'이라는 오명을 벗고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자국의 소프트파워 위상을 선전하고 싶은 중국 공산당의 계산과도 맞아떨어졌다. 중국 재계는 아시안게임뿐만 아니라 월드컵, 올림픽 등 세계적 행사를 발판으로 세계 시장을 주무르겠다는 포부다.

6일 현지 재계와 저장성 지방정부 등에 따르면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후원사로 참여하는 기업은 총 121개 부문 176개사다. 이 중 90% 이상이 중국 기업이며, 70% 이상이 항저우가 위치한 저장성 소속 기업이다. 한국이나 중동 등 국가의 기업은 불참했다. 후원 금액은 53억 위안(한화 약 1조원)에 달한다. 역대 아시안게임 중 최대 규모다.
파나소닉(일본)이나 인텔(미국) 등 소수의 해외 기업을 제외하면 라오빤디엔치(주방 가전), 361도(스포츠 용품), 아오크시(에어컨) 등 내수를 쥐락펴락하는 중국 기업이 대거 포함됐다. 이들 기업은 운영에 필요한 가전·가구 등을 공급하거나, 선수들에게 운동용품을 제공한다. 5년 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보다 규모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나이키·아디다스 등 해외 브랜드가 배제됐다는 점이 특이하다.
중국 기업들이 막대한 후원금을 내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째는 대부분의 후원사가 올해 상반기 흑자를 낸 이른바 '우수 기업'이라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361도는 올해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매출 18%, 순이익이 27.7% 증가했다.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3선~4선 도시에서나 팔리는 저가 제품이라는 오명을 벗고, 농구·육상 등 인기 종목의 핵심 브랜드로 발돋움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입했다.
경기장에 사용되는 연료를 공급하는 지리자동차 역시 상반기 영업이익 731억위안(약 13조 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5.8% 증가했다. 지리자동차는 자사가 보유한 세계 최초의 저탄소 메탄올 공장에서 막대한 양의 연료를 공급한다. 연간 11만톤의 무탄소 에탄올을 만드는 '녹색 연료' 생산능력을 적극 홍보하겠다는 의도다. 지리자동차 관계자는 "자사의 아시안게임 후원은 중국을 돕고, 아시안게임 정신을 실현시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둘째로는 중국 정부의 압박이다. 미국의 첨단기술 제재·주변국과의 갈등·침체된 경제성장률 등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중국은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저장성 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아시안게임 인프라 구축을 위해 투입한 돈은 2248억위안(약 42조원)이다. 도시철도나 공항 건설비용이 포함돼 있어 다소 부풀려졌지만,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174억위안)보다 10배 이상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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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정부의 투자금을 보전하고, 저장성 GDP(국내총생산) 성장 목표치 달성을 위해 기업들을 압박했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저장성 정부는 지난해 인민대표회의에서 GDP 성장 목표치를 5%로 제시했는데, 전년(3.1%)보다 오른 수치다. 현지 상황에 능통한 재계 관계자는 "자국에서 아시안게임·올림픽이 열릴 때 중국 정부가 기업들에게 동참 압박을 가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시안게임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추세고, 중국 내수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어 정부·기업의 발맞춤이 어느 정도 효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은 점차 감소세고, 경제활동 선행지표인 구매관리자지수(PMI)도 5개월 연속 경기 확장을 의미하는 50을 밑돈다. 청년 실업률도 역대 최고치인 20%를 웃돌고 있다.
과도한 돈이 투입되는 대형 국제 행사 대신 내실 다지기에 나서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내수가 지속 침체되는 만큼 경기부양책에 힘을 쏟거나, 기업들이 유동자산을 적극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롤랜드 라자 시드니 로위연구소 소장은 "중국 경기가 둔화되면서 은행은 물론 기업까지 중대한 타격을 입었다"라며 "현지 기업과 은행은 이제 해외로부터 충분한 금융 지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