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D현대그룹에 마침내 '정기선 시대'가 열렸다. 17일 사장단 인사를 통해 수석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한 정기선 회장(사진)은 향후 기존 조선 사업을 고도화하며 친환경선박, SMR(소형모듈원자로) 등 신사업에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손자이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 회장은 연세대 경제학과와 미국 스탠퍼드 MBA를 졸업했다. 2009년 현대중공업 기획실 재무팀을 시작으로 HD현대 경영지원실장, HD현대중공업 선박영업 대표, HD현대마린솔루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023년에는 부회장, 2024년 수석부회장 자리에 오르며 그룹의 실질적 후계자로 이미 거론돼왔다. '준비된 오너'였던 셈이다. 2023년부터 매년 부회장→수석부회장→회장으로 고속승진한 모양새다.
HD현대는 정 회장의 2023년 부회장 승진 당시 "기존 사업의 지속 성장은 물론, 새로운 50년을 위한 그룹의 미래사업 개척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었다. 지주회사인 HD현대와 조선부문 중간지주회사인 HD한국조선해양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정 회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HD현대사이트솔루션의 공동 대표도 역임키로 했다.
정 회장은 일단 그룹의 주력 사업인 조선 사업 고도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의 통합 법인이 일단 오는 12월 출범한다. 특히 방산·특수선 분야의 경쟁력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HD현대중공업은 국내 최다 함정 건조 및 수출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HD현대미포는 중형선 분야 세계 1위 조선소로서 함정 건조에 최적화된 도크와 설비, 8000척 이상의 수리·개조 경험을 축적해왔다. 한미 간 협력을 골자로 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 등에서도 HD현대는 주축 역할을 할 게 유력하다.
신사업 역시 정 회장이 강조해온 부분이다. SMR을 비롯해 수소, AI(인공지능) 등 그룹의 미래 전략 사업을 주도하는 게 그동안 그의 주 역할이었다.
테라파워의 빌 게이츠 창업자와 지속적으로 회동하며 SMR 사업에 힘을 줘온 정 회장이다. 해상 부유식 SMR은 물론 'SMR 추진선'까지 개발하는 게 목표다. 지난 2016년에는 HD현대마린솔루션의 설립을 주도하며 시총 11조원의 그룹 내 주력사업으로 성장시켰다. 또 2021년에는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작업을 주도해 건설기계 사업을 그룹의 핵심사업으로 육성했다.
지주사 HD현대에 대한 지분 확대가 그에게 남은 숙제다. 정 회장의 HD현대 지분율은 6.12% 수준이다. 지주사 출범 직후인 2018년부터 지분율을 늘려왔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는 지난해 6월부터 7월까지 약 2개월간 45차례에 걸쳐 HD현대 주식을 장내 매입했었다. 부친인 정몽준 이사장의 보유 지분(26.6%)을 순조롭게 물려받을 수 있을지 여부가 향후 관건이다. 상속세는 약 8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HD한국조선해양이 HD현대에 지급하는 배당금 등을 활용해 정 회장이 경영승계를 마무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