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멈춰선 'K-수소 드라이브'②

"전주기 생태계 구축으로 청정수소경제를 선도한다"
정부는 2020년 세계 최초로 제정한 '수소법'(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듬해 내놓은 '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에서 이런 목표를 제시했다. 정부의 강한 의지에 민간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한국은 산업 육성을 위한 첫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디뎠다.
그러나 불과 수년 사이 정책 동력은 눈에 띄게 약화했다. 부족한 지원과 일관성 없는 정책, 과도한 규제가 원인으로 꼽힌다. 이런 이유로 수소 산업의 '첫 단계'인 생산이 기대만큼 원활하지 않아 산업 생태계 구축이 지연되고 있다. 업계는 정부·국회에 강력한 컨트롤타워 신설, 과감한 예산·세제 지원, 성공사례 창출을 위한 '수소도시' 조성을 요구한다. 다음 달 열리는 새 정부 첫 수소경제위원회에서 어떤 대책이 나오느냐가 관심사다.
수소는 생산방식·친환경성에 따라 그레이·그린·핑크·블루 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그린수소는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기 때문에 가장 친환경적이다. 그런데도 화석연료를 사용해 만드는 그레이수소의 생산이 훨씬 많은 것은 '가격' 때문이다. 비싼 신재생에너지 전력 생산 비용, 낮은 수전해 설비 효율 등으로 그린수소는 생산단가가 높고, 이는 활용을 저해하는 최대 걸림돌로 평가된다.
정부는 4년 전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에서 첫 번째 과제로 '국내외 청정수소 생산 주도'를 제시했다. 그레이수소가 아닌 그린·블루수소 생산에 주력하되 이 중에서도 그린수소에 우선순위를 뒀다. 그린수소의 원활한 생산·공급을 위해선 단가 인하가 최우선 과제라고 판단, 대규모 생산 기반을 구축해 단가를 △2025년 ㎏당 6000원 △2030년 3500원 △2050년 2500원으로 계속 낮춰가겠다고 했다.
정부 목표대로면 현재 ㎏당 6000원까지 낮아졌어야 할 그린수소 생산단가는 2만원이 넘는다. 높은 판매 가격이 안 그래도 부족한 수요를 더 떨어뜨리는 형국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그린수소 생산 기술이 충분히 고도화되지 못했고 대량 생산도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그린수소 생산단가가 너무 높아 시장 자체가 돌아가지 않는다"며 "그레이수소도 적절히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소 산업 생태계 구축의 출발점인 '생산'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유통 등 이후 단계의 사업이 일제히 정체됐다. 생산단가를 일부 낮춰도 유통 단계에서 비용이 상승해 판매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현대자동차 '넥쏘' 인기를 바탕으로 모빌리티 분야에선 일부 성과가 나타나지만 아직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준은 아니다. 수소차·충전소 보급 실적은 목표에 한참 못 미치는데 정부는 오히려 내년 예산을 삭감하며 시장에 실망을 안겼다. 청정수소 발전 시장 확대, 수출 산업화도 현재로선 실현을 장담하기 어려운 목표다.
국내 한 기업 관계자는 "수소 생산이 원활하지 않고 대규모 소비처도 없어 산업 체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있다"며 "가장 큰 문제는 이 사업에 뛰어든 기업 중 실제로 돈을 버는 기업이 거의 없어 회의감이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상황에도 현대차·SK이노베이션 등 기업의 투자는 계속되고 있다. 결국 '에너지의 미래'는 수소가 될 것이란 확신이 있어서다. 대표적으로 현대차그룹은 최근 울산 수소연료전지 신공장 건설을 시작했고, 서남권에는 1GW(기가와트) 규모 PEM 수전해 플랜트를 건설하기로 했다.
그러나 업계는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산업 육성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막대한 초기 비용, 사업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정부의 강력하고 꾸준한 지원 없이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수소 사업이 비교적 활발한 중국·일본·EU(유럽연합) 등도 정부가 생태계 조성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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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업계는 새 정부 출범 후 수소 산업이 다시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재명 정부가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대전환'을 추진하고 공격적인 탄소 중립 목표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였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정부 '123대 국정과제'에 관련한 언급은 사실상 '청정수소 생태계 구축'이라는 한 마디뿐"이라며 "수소는 재생에너지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최적의 아이템인데도 정부가 너무 무관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이 글로벌 시장 선점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정부·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우선 '수소도시' 조성을 위한 법·제도 지원이 꼽힌다. 국회수소경제포럼 대표의원인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토론회에서 수소도시 조성을 통한 성공사례 창출 필요성을 언급하며 "이런 모델에서 빠르게 성과가 나오면 수소경제 정책이 주류로 발돋움하지 않을까 기대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말 홍기원 민주당 의원이 '수소도시 조성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수소도시를 '주거·교통 등 다양한 시민 생활 분야와 산업 분야에 수소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도시'로 정의하고, 정부가 5년마다 종합계획을 수립해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국회 한 관계자는 "수소도시 조성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있어 일부 다른 의원도 관련 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선 일관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권에 따라 정책이 바뀌며 기업이 투자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일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수소 사업과 관련한 정책 불확실성을 제거해 기업에 믿음을 줘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수소경제위원회' 관련 예산·인력을 늘려 정책을 수립·평가·개선하는 과정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울산=뉴시스] 배병수 기자 = 30일 오전 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수소연료전지 공장부지에서 열린 수소연료전지 공장 기공식에서 참석한 내빈들이 축하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2025.10.30.bbs@newsis.com. /사진=배병수](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5/11/2025112514575220302_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