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신년 임원 세미나 영상서 "좋은 실적은 시황 때문…AI, 원천기술 없다" 자만 경계

이재용 삼성전자(186,200원 ▲7,800 +4.37%) 회장이 최근 실적 급등에도 불구하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역대 최고 수준의 영업이익과 주가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잘해서가 아니라 시황 때문"이라며 긴장감을 놓치지 말라는 주문이다. 현재 상황이 AI(인공지능) 산업발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기) 덕분인 만큼 장기적 안목으로 본원적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미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지난주부터 전 계열사 임원 2000여명을 대상으로 '신년 임원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이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공유했다.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임원 세미나는 영상 상영과 외부 전문가 강연 등으로 이뤄진다. 해당 영상은 연초 이 회장과 사장단의 만찬에서 처음 공개됐다. 성우가 말하는 형식이며 이 회장의 직접 발언으로 소개되지는 않지만 사장급을 포함해 전체 임원들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통상 경영 전략 등과 관련한 이 회장의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복수의 관계자 등에 따르면 올해 영상에서는 위기론을 강조한 고 이건희 선대회장의 경영철학을 포함해 국제정세의 불확실성, AI 대전환의 시대적 중요성 등이 포함됐다. 특히 미중 갈등 구도 속에서 고환율 장기화와 관세정책 문제, 산업 전반에 걸친 중국의 거센 추격·추월 등이 부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선대회장의 '샌드위치론'도 소환됐다. 이 선대회장은 2007년 당시 전경련(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단 회의에서 우리나라가 쫓아오는 중국과 앞서가는 일본 사이에 놓인 샌드위치 신세라고 밝힌 바 있다. 영상에서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샌드위치"라며 위기의식을 촉구했다. 글로벌 불확실성 심화가 뉴노멀이 된 상태에서 미중, 중일 등 샌드위치의 구도가 더 복잡해졌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자만을 경계하는 이 회장의 뜻이 강조됐다. "최근 실적이 좋아진 것은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시황 때문"이라는 냉정한 현실 인식도 밝혔다. AI 부문에서도 '미국은 날아다니는데 우리는 아직 기어다닌다'는 의미로 더욱 기술력 강화에 집중해야한다는 자성이 포함됐다. "우리나라는 원천기술이 없고 남들이 만든 AI를 가져다가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수준"이라는 혹평도 따랐다.
![[서울=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2일 경기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내 첨단 복합 반도체 연구개발(R&D) 센터인 NRD-K 클린룸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NRD-K는 삼성전자가 미래 반도체 기술 선점을 위해 건설한 최첨단 복합 R&D 단지로, 공정 미세화에 따르는 기술적 한계 극복과 첨단 반도체 설계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2025.12.2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류현주](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01/2026012514103333566_2.jpg)
이같은 경영 방침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위기 경영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삼성은 작년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9년 만에 임원 대상 신년 세미나를 재개하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 "경영진부터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며 최고 수준의 위기의식과 자기반성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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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위기 때마다 작동하던 삼성 고유의 회복력은 보이지 않는다", "메모리 사업부는 자만에 빠져 AI 시대에 대처하지 못했다"며 강력히 경고했다. 이는 이른바 '사즉생'(죽고자 하면 산다) 정신으로 읽히며 삼성전자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이후 1년 만에 실적이 수직 상승했지만 근본적 경쟁력보다는 업황 개선에 올라탄 영향이 크기 때문에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는 작년 4분기 잠정실적 매출 93조원, 영업이익 20조원을 달성했다. 영업이익은 2018년 3분기에 세웠던 17조6000억원의 기록을 약 7년여 만에 갈아치우면서 최초로 20조원대에 올라섰다. AI 반도체의 핵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전반적 메모리 반도체 품귀현상이 벌어지고 결국 일반 D램이나 낸드까지 일제히 가격이 뛰었기 때문이다.
불과 2년 전인 2023년만 해도 삼성전자 반도체는 15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냈지만 단숨에 '분기 20조원 흑자'로 돌변하며 주가도 15만원을 돌파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단기간에 주가가 5만원에서 15만원으로 3배 급등했는데 그렇다고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3배 강해진 건 결코 아니다"며 "이재용 회장의 이번 메시지는 한국 대표 기업의 최고 책임자로서 불안감과 책임감에서 나오는 진정성 있는 주문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어 "우리 기업이 샌드위치 신세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대중 견제로 우리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측면도 있는데 이때를 활용해 빠르게 경쟁력을 키워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삼성인력개발원이 주관하는 이번 세미나에 참석한 임원들은 '위기를 넘어 재도약으로'라고 새겨진 크리스털 패를 받았다. 지난해 패에는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이라는 문구가 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