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생발전'이라는 취지 자체는 훌륭하다. 백화점과 홈쇼핑 등 대형 유통업체들에게 높은 수수료를 내는 중소 협력사를 위해 나선 것까지는 세상의 공감을 얻어내기에 충분했다.
지난달 6일 공정위는 전격적으로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과 11개 대형 유통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이 만나 중소업체에 대한 판매수수료율을 3∼7%포인트 낮추는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합의'가 한 달이 넘도록 표류하고 있다. 백화점을 비롯한 대형유통업체들은 지난달 말 공정위에 ‘자율적 인하안’을 제출했지만 반려됐다.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게 공정위의 인식이다.
하지만 '강압'적 자세로 나오는 공정위 처사에 유통업체들의 불만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유통업체들은 '영업이익을 줄여 수수료 인하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실무협의 과정에서 공정위의 압력에 더 이상 할 말을 잃은 분위기다. 지난 5일 공정위의 독촉을 받은 백화점 3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0일 모두 해외출장을 나갔고, 급기야 공정위는 11일 백화점의 대형 입점 업체에 대한 거래 실태조사에 나섰다고 밝히며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왜 이 지경으로 일이 틀어졌을까. 공정위가 각 기업 CEO와 합의했다고 발표한 시점부터 일이 꼬인 것이라고 업계에선 입을 모은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업체 대표들이 기본적인 정보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모임에 불려가 일률적으로 정해 놓은 합의서에 서명토록 한 것이 과연 '상호 합의'인가"라고 반문하며 "이는 '조폭'과 다름없는 행태"라며 깊은 감정의 골을 드러냈다.
유통업계에선 또 하나의 불만사항으로 공정위의 '말 바꾸기'를 지적하고 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업계 자율로 안을 제출하라고 해놓고선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하고, 영업이익의 얼마를 내놓으라는 식으로 압박해 놓고선 '그런 말을 한적이 없다'는 공정위의 이중적인 처사에 두 손 들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애초 대형유통업체에게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이런 볼멘 목소리가 나올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칼'을 쥔 공정위가 성과를 빨리 내겠다는 조급함으로 자신들이 가진 대의의 근본마저 그르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