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의 전근대식 경영](4) 中에서 벌어도 돈맥경화

이랜드그룹의 현금흐름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무리한 인수합병(M&A)에 적잖은 자금을 쏟아 부었고, 중국사업에만 의존한 채 해외 사업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결과 돈맥이 제대로 꼬였다는 것이다.
전체 포트폴리오를 볼 때 수익성은 좋아지고 있으나 자금흐름의 병목현상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생기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는 최근 추진하고 있는 쌍용건설 인수에도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다.
◇이랜드 주력회사, 계열사 자금지원에 '헉헉'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올 3월말 기준 그룹 지주회사인 이랜드월드가 국내외 계열사에 빌려준 단기대여금과 금융권 빚에 대한 지급보증(한도액기준)은 총 4721억원(원화기준)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연말 3946억원보다 19.6% 늘어난 수치다. 3월말 기준 계열사 지급보증액은 4157억원으로 지난해 말에 비해 19%(661억원), 대여금은 564억원으로 지난 연말보다 25%(114억원) 증가했다.
용도는 주로 해외사업 지원을 위한 것으로 파악된다. 우선 중국에서 패션사업을 펼치는 이랜드패션차이나홀딩스에 대한 지급보증한도를 3200만달러에서 4300만달러로 늘렸다. 동남아 사업과 관련한 이랜드아시아홀딩스과 관련한 신규보증도 6500만달러에 달했다. 국내 계열사에서는 레저사업을 맡고 있는 이랜드파크의 지급보증 한도가 기존보다 160억원 증액됐다.
이랜드월드는 계열사 지원으로 부족해진 지급보증 여력을 키우기 위해 증권사들과 약정한 차입한도를 1070억원 가량 증액했다. 수출입은행에 예금담보도 추가로 제공했다. 계열사인 이랜드리테일도 지주회사를 포함한 계열사에서 받을 채권이 428억원 가량 늘었다.
그룹의 양대 축을 맡고 있는 회사들의 지급보증 현황은 자회사들의 상황이 썩 좋지 않음을 시사한다. 그룹 전체적으로도 지난해보다 부채비율이 더욱 높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사업성공, 오히려 '독'되나…
이랜드그룹은 올해도 수익성 개선이 이뤄지고 있으며 부채가 심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보증 등 잠재부채를 비롯해 빚이 늘어나는 속도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원인은 이랜드 그룹의 기형적인 투자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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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그룹의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는 건 맞다. 이랜드리테일과 이랜드월드는 지난해 각각 1119억원과 751억원의 순이익(연결재무제표 기준)을 올렸다. 문제는 이 가운데 적잖은 자금이 국내외 자회사 투자로 다시 빠져나갔다는 점이다. 자금은 이랜드건설, 이랜드파크, 올리브스튜디오, 유로이랜드, 후아유홀딩스 등 적자를 내고 있는 기업들로 향했다.
또 다른 딜레마는 중국에서 적잖은 수익이 나오고 있음에도, 이를 국내로 들여오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모회사인 이랜드월드는 이랜드 패션차이나 홀딩스에서 배당이나 로열티를 받도록 돼 있으나, 중국정부의 외화반출 억제정책 탓에 간단치 않다.
우선 모회사에 지급할 수 있는 금액은 매출액의 3% 가량이고, 많아도 5%를 넘지 못할 거라는 게 패션업계의 시각이다. 1조원의 매출이 발생한다고 가정해도 그룹에 유입되는 현금은 최대 500억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실제 이랜드 패션차이나 홀딩스는 지난해 1조원 넘는 매출에 1400억원의 순이익을 거뒀으나, 이랜드월드의 재무제표에는 별다른 자금유입 흔적을 보기 어렵다.
오히려 중국 사업을 더욱 키우기 위한 자금지원이나 출자압박이 엿보인다. 중국사업이 현금흐름에는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박성수 이랜드 회장과 그를 보좌하는 경영진들의 스타일도 잘 봐야한다"며 "최근 자금흐름을 보면 중국투자를 늘리면 늘렸지, 줄이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가 많다"고 지적했다. 반면 국내외 M&A와 투자기업 지원을 위해 쓸 곳은 많다. 미국, 유럽 등 해외 계열사에서 누적되는 적자는 자금사정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중국 자회사 지분매각에 운명달려
이랜드그룹이 이랜드 패션차이나 홀딩스의 홍콩증시 기업공개(IPO)를 서두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선 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우니 상장과정에서 구주매각을 병행해 일부라도 자금을 회수, 급한 불을 끄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장에 걸리는 기간이 짧지 않고 경기침체로 인해 글로벌 증시가 동반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이랜드그룹이 최근 이랜드 패션차이나 홀딩스 지분 일부(20%)를 IPO전에라도 매각하겠다며 국내 기관투자자들을 모집하고 있는 건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 자금은 이랜드 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쌍용건설 인수를 위한 '실탄'으로 쓰일 수 있으나, 역시 변수가 많다. 지분가치를 얼마나 평가받느냐가 우선 관건이고, IPO가 지연될 경우 이랜드 그룹이 제공해야 할 안전장치가 마땅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