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또 다른 '을'들의 생존 투쟁

[기자수첩]또 다른 '을'들의 생존 투쟁

엄성원 기자
2014.02.14 06:20

"저는 대형마트에서 일해요. 일요일에 쉬면서 근무시간이 줄고, (그렇게 되자)신입사원은 들어오지 않아요. (대형마트와 거래하는) 농민과 납품하는 업체는 더 말할 것도 없겠죠. 오늘 설 앞두고 마지막 일요일, 예전 같으면 1년 중 제일 바쁜 날인데 불편한 맘으로 쉬고 있어요."

대형마트 납품 농어민과 중소 납품업체로 구성된 연합 단체가 정부의 대형마트 추가 규제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에 이런 독자 댓글이 달렸다.

대형마트 납품을 업으로 삼고 있는 농어민이나 중소기업, 임대상인들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조직적인 행동에 나섰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확대, 판매제한 품목 지정 등 이른바 유통 악법을 발의한 의원에 대해 낙선운동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왜 '유통악법', '낙선운동'이라는 날 선 표현을 써가며 반발하는 것일까?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의 상생을 외면하고 자기들만 살겠다는 의미일까?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농어민이나 중소기업은 추가 유통 규제를 막기 위한 자신들의 노력에 '살아남기 위한 을의 투쟁'이라고 이름 붙였다. 자신들도 정치권의 한마디에 생사가 달려있는 보잘 것 없는 '을'이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농어민을 대변하는 한국유통생산자연합회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월 2회 정기휴무가 본격화한 최근 2년간 납품 농어민과 중소기업은 연간 3조원 규모의 매출 감소를 겪었다고 한다.

출점 규제와 의무 휴무로 대형마트가 발주량 줄이다보니 납품 경쟁은 한층 치열해졌고, 이 과정에서 영세 농가와 중소기업 수 백 곳이 '연쇄 도산'이라는 이름으로 도태됐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서는 대형마트에서 특정 품목을 팔 수 없게 하는 '상생품목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51개 판매제한 품목을 지정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철회한 정책을 선거를 앞두고 국회에서 되살린 꼴이다.

정치권은 대형마트 출점 제한구역을 지금의 '전통상업보존구역'에서 '도농 복합 시지역 전체'로 확대하는 유통법 개정안도 발의한 상태다. 앞서 의무 휴무 조례가 제정된 일부 도농복합지역에서 주민 불편을 감안해 평일 휴무 등 자율적으로 휴무일을 조정했지만 이 법안에서는 이 같은 배려를 찾아볼 수 없다.

세찬 바람에는 되레 옷깃을 여미는 법이다. 선거 때만 되면 등장하는 유통 규제법이 과연 누구를 위한 규제인지, 그 규제가 정말 표로 연결은 되는 것인지 한번쯤 곱씹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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