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미테랑 전 대통령은 암으로 죽기 직전인 1995년 12월31일, 다름 아닌 오터런 요리로 최후의 만찬을 했다. 멧새의 일종인 살아있는 오터런을 잡아 한 달간 검은 상자에 가둬놓고 포도와 무화과를 잔뜩 먹여 4배 크기로 키운다. 이렇게 살찌운 오터런은 아르마냐 (프랑스 아르마냐 지방의 꼬냑)를 채운 술잔에 산 채로 절인다. 이걸 그대로 구워서 머리만 빼고 한입에 먹는다. 오터런 요리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오터런를 먹고 있노라면 그 새가 살아온 전 생애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미테랑 대통령은 오터런으로 마지막 만찬을 한 후 1주일간 다른 어떤 음식도 입에 대지 않고 숨을 거뒀다고 한다. 오터런은 미테랑 대통령에게 죽기 직전 꼭 맛보고 싶었을 정도로 강렬한 추억의 맛이었음이 분명하다.
중국 현대사의 최고 지식인으로 꼽히는 후스는 중국의 야만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전족을 한 여인 장둥슈와 결혼했다. 자유연애를 주창하며 당시 청년들을 열광하게 했던 후스가 '좋은 아내의 상징'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이유로 엄지 발가락 이외의 발가락을 발바닥 방향으로 접어 넣은 전족 여인과 결혼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후스는 최고의 지식인이었지만 장둥슈는 글자를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후스가 주미 중국 대사로 부임하면서 장둥슈도 미국으로 날아가자 사람들은 대사 부인이 중국어와 영어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중국의 망신이라며 비아냥댔다.
그러나 장둥슈는 중국에서 공수해간 무쇠솥에 닭과 오리, 돼지고기, 양고기, 배추 등을 통째 넣고 끓였다. 이 탕 한 사발과 찐빵 한 덩어리를 대접하면 어떤 미식가들도 황홀해했다고 한다. 중국 대사관저에서 식사 한 끼 얻어먹지 못한 사람은 미국의 외교가가 아니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어수선한 시국에 한가하게 먹는 타령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먹는 것이 그 사람의 전부라는 말도 있다. 오메가3를 많이 먹으면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욱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다. 탄수화물을 먹으면 지구력이 필요한 일을 잘 하게 된다. 단백질은 힘을 나게 해준다. 한 번에 포식하지 않고 간식을 자주 먹으면 일의 능률이 오른다. 일제시대 일본은 상투를 자르라고 단발령을 내릴 순 있었지만 된장찌개를 없애지는 못했다. 입맛은 한번 길들여지면 절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한국 식품업계가 중국을 주목해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차피 한국의 내수시장은 작고, 식품업체들의 성장성은 지금 목까지 차올랐다. 이제 한국 식품기업들이 중국인의 입맛을 공략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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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을 잡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한국 선례를 볼 때 1인당 소득이 3000∼1만 달러를 달릴 때 내수소비가 폭증하며 식품시장도 급신장했다. 시대를 뛰어넘는 스테디셀러인 새우깡(1971), 바나나맛우유(1974), 초코파이(1974), 요플레(1983), 빼빼로(1983), 신라면(1986) 등이 다 그렇게 폭발적으로 매출을 늘린 제품이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부터 먹고사는 것이 나아져 군것질꺼리를 자주 찾게 된 시절까지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식품들이다. 이 내수 소비가 급신장하는 시기의 입맛을 잡는다면 두고두고 스테디셀러로 매출을 키울 수 있다.
중국은 2008년 1인당 소득이 3000달러를 돌파한 이래 현재 내수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 식품기업들은 바로 이때 중국인의 입맛을 잡아야 한다. 나이가 들면 사람의 혀는 황색이 되지만 머리는 맛을 정확히 기억한다. 어린 시절 입맛은 절대 잊혀 지지 않는다. 지금 중국의 아이들이 한국 식품을 먹게 된다면 20~30년 후 그들의 소비력이 최전성기를 맞을 때도 그 맛을 기억하고 찾을 것이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한국 식품기업들이 곱씹어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