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신의 와인Pick!] 이럴 때 이 와인 어때?

[박영신의 와인Pick!] 이럴 때 이 와인 어때?

로피시엘=박경배 기자
2026.02.04 23:40

새해의 비장한 다짐에 묵직한 응원이 필요할 때, '자파타 말벡 아르헨티노' 와인 어때?

연말의 요란했던 소음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거리, 눈부시게 떠오르는 태양과 서늘한 공기가 그 빈자리를 채운다. 평상시보다 좀 이른 아침이지만 차갑고 묵직한 공기를 가르는 비장한 결심들이 함께 뒤엉켜 있다.

창밖의 눈이 채 녹지 않은 이른 아침 풍경을 바라보거나 홀로 앉아 정리되지 않은 계획들을 끄적이듯 사람들은 저마다 올해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리라 새롭게 다짐하곤 한다.

결코,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는 것이 극적인 변신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거창한 선언이기보다, 지금까지의 나를 기반으로 조금 다른 방향을 선택해 보는 용기에 가깝다.

다시 한번 해보겠다는 마음, 그리고 아직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설렘만으로도 새해의 첫 달은 이미 기대와 희망으로 충분히 넘쳐난다.

그러니 "올해는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해 볼 것인가"에 대해 너무 깊이 고심하지 말자. 그 결심이 남들보다 더 크지 않아도, 겉보기에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신의 발걸음은 이미 충분히 의미가 있으니까.

새해의 문턱에서 마주하는 다짐들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도, 그 이면에 지난 시간의 치열한 고민이 서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척박한 환경일수록 더욱 치열하게 생의 의지를 다지는 포도의 본성은 우리의 삶과 참 많이 닮아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반전을 이뤄내며 재생과 부활의 아이콘이 된 품종이 있다. 바로 아르헨티나의 심장이라 불리는 말벡(Malbec)이다.

말벡은 한때 사라질 뻔한 위기를 겪었지만, 오히려 그 시련을 양분 삼아 전 세계인의 찬사를 받는 고결한 품종으로 거듭났다.

어쩌면 우리를 힘들게 하는 현재의 척박한 환경은 나의 진가를 드러낼 가장 최적의 무대일지도 모른다. 안데스의 메마른 고립 속에서 비로소 세계적인 명작으로 거듭난 말벡처럼 당신이 내딛는 그 고독하고 담담한 한 걸음이 훗날 가장 찬란한 부활과 단단한 결실의 서막이 될 것이다.

◆외면의 아픔을 부활과 환희로 바꾼 개척자 말벡(Malbec)

말벡의 역사는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틱한 인생 역전이다. 프랑스 까오르(Cahors)에서 '검은 와인'이라 불리며 거친 매력을 뽐내던 이 품종은, 유럽의 포도밭을 초토화한 필록세라 재앙 이후 고향에서 외면받는 처지에 놓였다. 당시 말벡은 병충해에 취약하고 변덕스러운 날씨를 견디지 못해 농부들에게 외면받던, 소위 손이 많이 가는 참 까다로운 품종이었다.

하지만 고향에서 버림받다시피 하던 말백 품종은 아르헨티나의 미래를 내다본 정치가 사르미엔토와 프랑스 농학자 미셸 에메 푸제의 손에 의해 운명이 바뀌었다. 프랑스에서 가져온 작은 묘목들이 안데스의 거친 흙에 처음 심겼던 1853년 4월 17일. 훗날 전 세계 와인 잔 속에서 피어날 화려한 반전의 첫 기록이 되었다(말벡 월드 데이: 오늘날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이 기념하는 '말벡 월드 데이(Malbec World Day)'가 4월 14일인 이유다).

19세기 중반 해발 1,000m가 넘는 고산지대의 안데스 산맥, 산소가 부족하고 태양이 살을 태울 듯 강렬한 아르헨티나 멘도자의 척박한 땅은 말벡(Malbec)에게 시련이 아닌 축복의 땅이 되었고, 그토록 갈구하던 눈부신 햇살과 건조한 바람을 선물했다. 고향의 비옥한 땅에서는 보여주지 않던 본연의 화려함이 역설적이게도 낯선 땅의 척박함 속에서 비로소 터져 나온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미처 다 보여주지 못했던 실크같은 탄닌과 묵직한 과실의 풍미가 멘도자의 땅에서는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지금 새로운 길을 택해 첫발을 내딛는 우리의 모습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1월, 아직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설렘과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이 교차하는 그 비장하면서도 조용한 시작에 '까테나 자파타 말벡 아르헨티노'가 함께하면 어떨까?

/사진출처: 신동와인
/사진출처: 신동와인

◆자파타 말벡 아르헨티노(Catena Zapata Malbec Argentino)

Winery: Catena Zapata

Grapes: Malbec

Region: Argentina / Mendoza / San Carlos / Consulta

Alcohol: 14% (Vintage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음)

◆까테나 자파타(Catena Zapata) 와이너리 이야기

1902년 이탈리아 이민자 니콜라 까테나가 멘도자에 첫 포도밭을 일군 이래, 현재 4대째 가족 경영을 이어오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와이너리다.

현 소유주 니콜라스 까테나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안데스 고산지대(해발 5,000피트 등)의 테루아를 발견해낸 인물이다. 그는 아르헨티나 와인을 '양' 중심에서 '품질' 중심으로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양조업자다.

이들이 개척한 아드리아나(Adrianna) 포도원은 세계적인 평론가들로부터 '남미의 그랑 크뤼'라는 극찬을 받으며, 아르헨티나 말벡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까테나 자파타 말벡 아르헨티노(Catena Zapata Malbec Argentino)' 이 와인의 라벨에는 말벡이라는 품종이 겪어온 탄생과 시련, 그리고 찬란한 부활의 역사가 네 명의 여인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와인 라벨 속 4인 여성의 상징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말벡이 태어난 프랑스 카오르의 중세 시대를 상징(탄생).

이민자: 푸제와 같은 개척자들이 안데스로 묘목을 가져온 험난한 여정을 상징(이동).

필록세라: 유럽의 포도밭을 파괴하며 말벡을 고향에서 몰아냈던 시련을 상징(죽음).

아드리아나 까테나: 아르헨티나에서 말벡을 세계 최고로 부활시킨 현재 가족을 상징(부활).

◆와인특징

-수작업 발효 (Hand-Crafted): 기계가 아닌 전 과정 수작업으로 진행. 20%는 줄기째(Whole cluster), 80%는 껍질째 새 프랑스 오크통에 담아 복합적인 구조감을 형성함.

-28일의 장기 발효: 약 한 달간의 충분한 발효 과정을 통해 포도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냄.

-저온 추출 (Cold Fermentation):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여 말벡 특유의 섬세하고 힘 있는 아로마를 온전히 보존함.

-수작업 마무리: 발효의 끝맺음까지 정성 어린 수작업을 고집하여, 입안에서 감도는 실크 같은 질감과 부드러운 탄닌을 극대화함.

18개월 오크 숙성: 프랑스 오크 배럴에서 18개월간 긴 잠을 자며 깊은 풍미와 완성도를 더함.

◆테이스팅 노트

-외관 (Appearance): 심연처럼 깊은 딥 퍼플 컬러. 높은 점성과 압도적인 농축미

-향 (Nose): 1차 향은 갓 피어난 제비꽃(Violet)과 라벤더의 화사한 플로럴향, 뒤이은 잘 익은 블랙베리, 블루베리, 그리고 카시스의 짙은 과실 향이 층층이 쌓임.

2차 향: 새 프랑스 오크에서 기인한 바닐라, 스모키한 타바코, 볶은 원두의 향취가 과실미를 우아하게 감싸 안음.

3차 향: 안데스 고산지대 젖은 돌의 광물향, 흑연의 미네랄리티.

-팔렛 (Palate): 입안에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구조감(Structure)은 마치 잘 짜인 정교한 건축물과 같음.

Attack: 첫 느낌은 매우 풍만하고 벨벳처럼 부드럽다. 저온 발효를 선택했기에 과실의 순수함이 입안 가득 청량하게 퍼짐.

Tannin & Acidity: 탄닌은 모난 곳 없이 둥글고 정교함. 자칫 무거울 수 있는 풀바디의 무게감을 고지대 특유의 날카로운 산도가 완벽하게 지탱하며 탁월한 밸런스를 이룸.

Finish: 피니시는 매우 길고(Long Length) 우아함. 삼킨 후에도 다크 초콜릿의 쌉싸름함과 야생 허브의 스파이시함이 교차하며 긴 여운과 우아한 피니시.

-결론 (Conclusion): 입안을 감싸는 벨벳 같은 질감과 안데스의 서늘한 미네랄리티가 공존하는 와인, 그 힘과 우아함을 동시에 갖춘 말벡의 정점. 20년 이상의 장기숙성 잠재력을 지님

◆푸드 페어링 (Food Pairing)

-일반 페어링 (Classic Pairing): 한우 갈비찜, 양갈비구이, 매콤한 소꼬리 수육, 오리로스

-비건 페어링 (Vegan Pairing): 간장 양념의 표고버섯 강정, 들깨 시래기 찜, 고추장더덕구이, 대추와 밤을 넣은 약식(약밥)

말벡 한 잔에 담긴 안데스의 햇살과 바람을 음미하며, 당신만의 새로운 궤도를 그려보길 바란다. 그 또 다른 시작이 말벡처럼 향기롭고 단단하기를, 말벡의 메시지가 당신의 심장에 닿기를 소망한다.

더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고 남들보다 조금 늦은 시작이라도 상관없다. 1월의 대지는 꽁꽁 얼어붙은 듯 보여도, 그 아래서는 가장 뜨거운 생명의 박동이 봄을 준비하고 있으니깐.

[에필로그] 2026년 새해를 맞아 '이럴 때 이 와인 어때?'가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왔습니다. 교과서 같은 정보보다는 매 순간 스치는 감정과 처한 상황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와인들을 세밀하게 골라 전하려 합니다. 새로운 시작의 설렘을 담아, 올해도 여러분의 곁에서 따뜻한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박영신 와인 칼럼니스트
박영신 와인 칼럼니스트

-박영신 와인 칼럼니스트-

"뿌리는 어둠 속에서 길을 찾고, 가장 거친 곳에서 자란 포도는 세상에 없던 고귀한 가치와 향기를 품는다."

박영신 와인 칼럼니스트는 현재, 경희대학교에서 와인 소믈리에를 전공.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조리외식경영학 박사 수료를 했다.

여러 국내 와인대회에서 심사위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다년간의 와인전문숍, 와인전문바, 그리고 와인스쿨 운영으로 실무 현장 경험을 쌓았다. 식음료와 교육 분야의 다양한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와인 문화의 깊이를 탐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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