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신의 와인 Pick!] 이럴 때 이 와인 어때?

[박영신의 와인 Pick!] 이럴 때 이 와인 어때?

로피시엘=박경배 기자
2026.10.29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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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리 가는 시간 탓에 마음이 먼저 저무는 저녁,
암브로지 소비뇽 블랑 레이트 하비스트 2022(Conacul Ambrozy Sauvignon Blanc Late Harvest2022) 비건 와인

메리골드/사진제공=필자.
메리골드/사진제공=필자.

가을 해가 짧아지면 골목 담벼락 아래 화단마다 메리 골드가 노랗게 켜진다.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마지막 힘을 다해 피는 꽃이다. 꽃잎을 스치면 알싸하고 쌉쌀한 향이 오래 남는다. 해가 기운 저녁, 그 앞에 쪼그려 앉으면 하루가 지나가는 속도를 잠시 잊게 된다.

메리골드라는 이름은 '마리아의 금'에서 왔다. 중세 시절, 성당의 제단이나 성모 마리아상 앞에 금화나 값비싼 예물을 바치고 싶어도 너무 가난해 그럴 수 없었던 서민들이 있었다. 그들은 금화 대신 자신들이 키운 가장 찬란한 금빛의 메리골드 꽃을 꺾어 제단에 올렸고 이것이 "마리아에게 바치는 금"이라는 의미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처럼 '마리아의 금'이라는 이름 속에는 가장 소박한 이들이 품었던 가장 빛나는 정성과, 성모 마리아를 향한 순수한 경배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금화를 바칠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이 대신 금빛 꽃을 제단에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인도에서는 신에게 올리는 꽃 목걸이가 되듯이 어느 땅에서든 이 꽃은 가진 것 중 가장 빛나는 것을 건네는 마음이었다.

금빛 꽃 앞에서 금빛 와인이 떠오른다. 가을 황금 들판에 가장 늦게까지 가지에 매달려 있다가 그 황금 빛과 향으로 일궈 낸 와인, 루마니아 레카슈의 암브로지 소비뇽 블랑 레이트 하비스트(Conacul Ambrozy Sauvignon Blanc Late Harvest)다. 마리아가 금화 대신 금빛 꽃을 바쳤던 마음으로 한 잔 건네고 싶은 와인이다.

◆ 암브로지 소비뇽 블랑 레이트 하비스트 (Conacul Ambrozy Sauvignon Blanc Late Harvest)

/사진 제공=비니더스 코리아
/사진 제공=비니더스 코리아

- Country : 루마니아

- Region : 바나트, 레카슈(Recaș)

- Producer : 크라멜레 레카슈(Cramele Recaș)

- Grape : 소비뇽 블랑 100%

- Alcohol : 13.5 (375ml)

- Farming/VEGAN : 비건 인증 V-Label VEGAN

◆ 귀부균 그래도 비건일까?

이 와인은 귀부균(Botrytis cinerea)의 도움으로 태어난다. 포도 껍질을 파고들어 수분을 빼앗으면 당과 향이 응축된다. 그렇다면 곰팡이로 만든 와인도 비건 일까? 곰팡이는 동물이 아니므로 귀부균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건 여부는 포도가 아니라 와인을 맑게 하는 청징 과정에서 크게 갈린다. 비건 인증은 와이너리 단위여서 병에 비건 로고가 있는지는 매장에서 라벨을 직접 확인하는 편이 좋다. 비건(청징 과정)과 유기농(재배 방식)은 별개의 개념이기도 하다.

◆ 와이너리 이야기: 크라멜레 레카슈(Cramele Recaș)

1998년 영국인 필립 콕스가 루마니아 서부 바나트(Banat) 레카슈 지역에 설립한 와이너리로, 루마니아 대표 명문으로 급성장했다. 혁명의 발상지 티미쇼아라 인근의 최적화된 테루아 속에서 최고급 포도를 길러내고 있다. 와인 명칭은 귀족 가문 '암브로지'의 유산에서 비롯되었다. 과거 가문의 라요시가 미국 수목원에서 영감을 받아 고향에 수목원을 만들고자 했던 꿈은 전쟁으로 좌절되었으나 100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날 비건 와인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와인은 일반 시기보다 늦게 수확해 당분과 풍미가 극도로 응축된 소비뇽 블랑으로 빚어져 싱그러운 허브 향과 잘 익은 과실미의 놀라운 복합미가 돋보인다. 와인 라벨에는 국제 비건 인증(V-Label VEGAN)을 획득하여 동물성 청징제를 배제한 친환경 클린 와인의 가치를 담았다.

◆ 테이스팅 노트 (Tasting Notes)

-외관 (Appearance): 맑고 선명한 골드빛과 메리골드 꽃잎을 닮은 영롱한 노란 빛이 잔 안에서 우아하게 번진다. -향 (Nose): 은은한 아까시 꽃과 자스민, 레몬그라스 허브의 향긋한 노트로 시작해, 과숙 된 황도 복숭아, 서양배, 살구, 모과, 달콤한 멜론의 풍성한 과일 향이 층을 이룬다. 여기에 망고와 패션프루트 같은 이국적인 열대과일의 진한 아로마를 더하고 진득한 아까시 꿀과 은은한 흰 꽃향의 뉘앙스가 더해져 매혹적인 복합미를 완성한다.

-맛 (Palate): 꿀처럼 달콤하고 진득한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우지만, 소비뇽 블랑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산도와 청량한 라임 제스트의 뉘앙스가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어 결코 무겁지 않다. 벨벳처럼 부드러운 텍스처와 매끄러운 알코올의 균형이 돋보이며 입안 가득 레몬 그라스 허브와 은은한 시트러스의 여운이 길게 이어진다.

-결론 (Conclusion): 자연의 섭리가 빚어낸 늦 수확과 귀부의 신비로움과 그리고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비건 와인으로써 가치가 조화롭다. 황금빛 계절의 풍요로움을 담은 상큼하고 달콤한 밸런스가 압도적인 완성도를 선사한다.

◆ 푸드 페어링 (Food Pairing)

- 일반 페어링: 푸아그라, 숙성 스시, 숙성 치즈, 치즈케이크

-비건 페어링: 오렌지 타르트, 양파를 올린 구운 단호박

- 혼술 페어링: 말린 무화과, 호두 (375ml 하프 보틀이라 혼자 마시기 좋다)

박영신 와인 칼럼니스트
박영신 와인 칼럼니스트

-박영신 와인 칼럼니스트-

" 가장 늦게 거둔 포도로 빚은 와인은, 내게 가장 소박하고 환한 금빛의 위로가 된다."

현 한국와인소비자협회(KWCA)회장으로, 경희대학교에서 와인소믈리에학 석사와 조리외식경영학 박사를 수료했다. 현장 실무경험이 풍부한 와인바, 전문 와인숍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소비자 관점에서 와인 시장을 분석하고 소비자 니즈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비건 와인 및 와인 소비자 행동과 관련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으며, 국내 주요 와인 품평회와 와인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와인 칼럼니스트이자 협회장으로서 올바른 와인 소비문화 정착을 위해 다양한 교육과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으며, 생산자·유통자·소비자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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