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부셨던 경제발전을 무색하게 하는 한국경제의 방황이 계속되고 있다. 영미식 글로벌 스탠다드, 유럽식 복지국가, 신자유주의 그리고 또다시 상생의 복지로 이어지는 외제 베끼기도 이제는 지친 듯하다. 사람이 길을 잃으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라 했다. 우리에게 그 자리는 어디일까? 경제발전을 시작했던 1960년대 초인가. 재벌이 위용을 드러낸 1980년대일까. 아니면 식민지 치하였지만 경제성장은 놀라웠다고 강변되는 경술국치의 시기일까. 이들 시기는 모두 현재의 황당함을 이해시켜주는 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미래를 가늠할 좌표는 주지 못한다. 그래서 저 멀리 한국 자본주의의 원류들을 찾아보았다.
개성상인, 즉 송상이 그 원류의 하나일 것이다. 몇 가지 이유를 들어본다. 중국에 저장 성인이 있고 일본에 오사카 상인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송상이 있다. 유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시아의 대표상인이다. 고려와 조선 그리고 일제까지 천년 동안 지속된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하다. 재벌들과 달리 엄격한 무차입 경영으로 외환위기의 시름을 덜어주었던 송상 기업들은 우연이 아니다. 한 가지 업종에만 전념하는 서구적 기업의 특색도 송상의 전통이다. 인간 지혜가 낳은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 하는 복식부기를 서양보다 200년 앞서 사용한 '송도사개치부법'의 혁신성도 긴 역사를 지탱해준 원동력이다.
그러나 영웅담은 침대에서 읽어주는 이야기 거리는 되겠지만 사회를 지탱해주지는 못한다. 장보고가 아닌 송상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렇게 베끼고자 하는 서구의 제도들이 이미 송상에서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송상의 상업제도 중 가장 부각되는 것은 사개치부법, 차인제 그리고 시변제이다. 이 중 차인제는 사업과 인력의 재생산을 위함이고 시변제는 자금을 융통하기 위한 제도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두 제도 모두 정말 놀랍다.
우선 차인제는 도제제도로 서양의 대립보다는 상생을 지향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를 정리하자. 개성상인은 10년 이상 도제적으로 양성한 점원이 믿음직스럽게 되면 차인으로 등용한다. 주인은 양성한 도제를 책임지고 독립시킨다. 주인은 차인에게 무담보로 자금을 대여하고 상업을 자영토록 한다. 주인은 차인의 업에 대해 일절 간섭하지 아니하되 이윤이 생기면 나눈다. 차인이 점차 자본을 조성하면 차인은 자립한다. 장차 가업을 승계할 자제는 반드시 다른 상가에서 도제과정을 거치게 한다.
시변제도는 아무런 담보물 없이 오로지 신용에만 기초한 금융조직이다. 차인의 성장도 이 시변에 기반한 것이다. 조선식산은행이 조사한 '개성의 시변'은 이렇게 전한다. 노련한 중개인들이 조합을 설치하여 그 조합의 활동을 책임지고 운용한다. 중개인이 매일 이용자들을 방문하고 탐문하여 자금의 수요가 있으면 공급자를 찾아가 금액과 기간을 알린다. 공급자는 이용자가 누구인가를 묻지 않고 돈을 넘기고 중개인은 이를 차입자에게 전달한다. 상환기일이 되면 차입자가 대주를 방문하여 직접 상환한다.
고루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대량생산에서 유연전문화로 나아가는 생산조직, 네트워크 경쟁으로 치닫는 기업 간 경쟁이 작금의 현실이다. 사업과 고용 창출에 기반을 둔 복지체제의 구축 그리고 담보보다는 신용에 기반을 둔 금융이 복지국가의 참모습이다. 저임금보다는 숙련 형성의 기반 위에 경제통합을 이루어야하는 남북문제도 있다. 황당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독일 산업의 경쟁력은 도제제도를 산업별 직업훈련제도로 정착시킨데서 비롯하며, 일본 역시 기업별 직업훈련 과정으로 승화된 도제제도의 전통이 부품소재 경쟁력의 원천이다. 다시 되살릴만한 천년의 송상 전통인 것이다. 무차입 경영도 한 때는 남의 얘기였다. 천년을 이미 걸어보았고 또 결국에는 가야할 길이라면 그 길로 발걸음을 되돌림이 마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