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사회와 그 적들.' 왜 뜬금없이 약 65년이라는 오래 전에 칼 포퍼(Popper)가 쓴 저서의 제목을 끄집어내는가. 올 3월초부터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열린사회인지 고민하게 만든 여러 사건들이 동시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열린사회에 관한 포퍼의 주장을 거칠게 정리하면 개인의 이성이 아무런 제약 없이 비판하고 토론해 점진적으로 발전해 가는 사회가 바로 열린사회이며 결정론적인 역사적 관점, 전체주의를 열린사회의 적으로 보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가 이성적인 개인이 자유롭게 비판하고 토론하고 발전하는 사회인지 통탄하게 만드는 사건이 정부를 대표하는 국무총리실과 청와대에서, 우리나라 기업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에서, 그리고 준 공공기관인 한수원에서 영리조직과 비영리조직을 막론하고 잘못된 행동-은폐-폭로의 악순환 고리를 지켜보며 올 3월이 지나고 있다.
숨겨왔던 잘못이 밝혀지면 잘못한 사람을 처벌하고 재발방지를 다짐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잘못된 행동의 은폐시도는 오랜 기간동안 쌓아 왔던 조직의 명성을 하루 아침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너뜨릴 수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과연 무엇이 우리 사회가 열린사회로 가는 것을 막고 있는가. 열린사회의 적은 제도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의식 속에 그리고 사회와 조직의 문화 속에 숨겨져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열린사회의 적의 첫 번째는 잘못된 행동을 영원히 감출 수 있다는 의식이 아직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수원의 경우 부산시 의원이 우연히 한 식당에서 한수원 협력업체 직원들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사실 확인을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고, 삼성전자의 경우 공정위의 조사를 방해하고 기록을 폐기하는 장면이 CCTV를 통하여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 민간사찰 의혹과 은폐는 뒤를 돌봐 주기로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한 행위 참여자의 폭로로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각종 첨단 기기, 소셜 미디어의 발달 그리고 불의에 대한 인간의 죄책감 (적어도 불편함)은 이제 더 이상 잘못된 행동을 숨기는 것이 불가능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경선에서 패배한 사람들의 상대후보의 불법행위에 대한 연이은 폭로는 바로 언젠가는 모든 것이 밝혀진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잘못된 행동을 '우리가 남인가'라는 '공범의식' 또는 '선의로 도움을 준' 매수행위를 통하여 덮을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의 의식 속에 남아 있는 한 열린사회는 불가능할 것이다.
두 번째 적은 인간 실수의 불가피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들 수 있다. 완벽주의에 빠져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일벌백계주의는 자그마한 실수도 숨기려 하게 만들뿐이다. '우발적인 실수' 혹은 '인간과 복잡한 시스템의 상호작용 속에서 생길 수 있는 사고'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그 실수를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세 번째 적은 결과(성과)지상주의를 들 수 있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일단 성공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사회는 열린사회가 아니다. 탐욕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방법의 정당성을 도외시하는 자세가 문제다. 그래도 공정위 조사과정을 막은 행위에 대해 삼성이 스스로 "정부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한 행위는 명백한 잘못"이라고 평가한 것에서 열린사회에 대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잘못된 행위에 대해 대가를 치르고 반성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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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열린사회가 되려면 열린사회의 적을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열린사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투명성에 대한 진지한 생각이 필요하다. 투명성은 단순히 모든 것을 낱낱이 다 드러냄을 의미하지 않는다. 투명성은 사회나 조직의 이해관계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려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건전한 비판과 대안 마련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어떤 지식과 관점도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성에 기반을 둔 비판과 토론 그리고 점진적인 개선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좀 더 열린사회로 그리고 투명한 사회로 만드는 힘임을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