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은 주식을 발행한 후 투자자에게 팔아 자금을 조달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투자자가 자신의 투자금을 회수하려 할 때 보유한 주식을 발행사에 되파는 것 외에 다른 수단이 없다면 애초부터 기업이 투자자를 찾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결국 이런 방식이라면 기업이 주식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주주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다른 투자자에게 팔아넘길 수 있다면 이 문제는 해결된다.
파생상품도 마찬가지다. 위험을 헤지하려는 경제 주체는 파생상품 계약을 통해 누군가 다른 주체에게 위험을 넘기고 그 주체는 위험을 부담한다. 그런데 위험을 부담한 측이 어떤 이유로 위험부담에서 벗어나기를 원할 때 당사자간 파생상품 계약 해소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면 위험을 헤지하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선뜻 위험을 부담하겠다는 주체가 나타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자신의 위험부담, 즉 파생상품 포지션을 누군가 다른 주체에게 넘길 수 있다면 이 문제는 해결된다. 파생상품이건 주식이건 발행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유통시장 활성화가 동반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로 인해 유통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이나 위험헤지 수요의 충족과 무관하게 주식이나 파생상품을 넘겨받아 이익을 얻으려는 동기를 가진 다수 투자자의 참여가 필요하다. 이 이익은 가격변동을 통해, 다시 말해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으로 실현된다.
재무이론에서는 이런 목적의 투자를 '투기'(speculation)라고 부른다. 투기란 '어떤 자산의 가격상승에 따른 이익을 기대해 그 자산을 사고 동시에 가격하락의 위험을 부담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 행위가 '좋다, 나쁘다' 하는 가치판단에 대한 의미는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국내 자본시장에서 투기라는 말은 가치중립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것 같다. '투기세력의 온상으로 변질된 시장을 정상화한다' 같은 표현에서 드러나듯 투기는 제대로 된 자본시장을 만들기 위해 근절돼야 할 행위로 매도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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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적 투자자들은 기꺼이 위험을 부담하며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해당 자산의 적정한 가격을 발견해내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필수적인 존재다. 효율적인 자본시장이 형성되려면 반드시 많은 투기적 투자자가 참여해야 한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투기가 문제가 되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미래 가격변동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를 형성하는 과정 없이 시장에 뛰어든 투기적 투자자들이 상당부분 존재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단순하게 남이 투자이익 얻는 것을 보고 따라한다든가, 귓가에 들려오는 소문을 믿고 뛰어든다든가, 또는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 결과로 '비자발적으로' 투기적 투자자가 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본래 의미의 투기와 잘못된 과정을 거친 투기를 구별해야 하며 시장에 대한 규제 역시 불완전판매 근절과 같이 문제가 되는 부분을 고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단순히 투기적 투자자가 문제된다는 이유로 질적 차별성에 대한 고려 없이 시장 전체를 위축시킬 수 있는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