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걸면 걸리는 '복불복' 면세한도

[우리가 보는 세상]걸면 걸리는 '복불복' 면세한도

송지유 기자
2013.05.16 08:30

"올해부터 삼재(三災) 라더니 정말 되는 일이 없어. 남들은 비싼 가방 몇개씩 사가지고 잘도 들어오는데…. 나만 세관에 걸려서 세금을 물었지 뭐야. 면세한도 400달러는 웬말이니? 영양크림 1개 사고 애들 옷 몇개 샀더니 훌쩍 넘었더라. 기자양반, 현실에 안 맞는 제도는 빨리 고쳐야 하는거 아니야?" 얼마전 중학교 동창모임에서 한 친구가 속사포처럼 불만을 쏟아냈다.

전업주부인 그 친구는 학부모 모임에서 만난 동네 아줌마들과 함께 최근 중국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남편 눈치보며 1년간 경비를 모아 큰 맘 먹고 다녀온 해외여행. 다 좋았는데 여행의 끝이 행복하지 않았다. 운이 없어서 탈세범으로 몰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저 철없는 아줌마의 넋두리일까. 아니다. 지난해 각 세관에서 휴대품 조사를 받은 입국자는 약 52만명이다. 한해 해외 여행객이 1400만명에 달하지만 인력 부족 등 이유로 전체의 약 3∼4% 정도만 무작위로 추출돼 세관 검사를 받는다. 상습적으로 면세한도를 위반해 관세청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사람을 제외하면 일반 여행객이 검사를 받을 확률은 현저히 낮다.

면세 한도 문제도 그렇다. 한국의 1인당 면세 한도는 400달러(약 한화 44만5000원)로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5200달러였던 1996년에 책정한 것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2만2500달러(2012년 기준)로 4배 이상 늘었고 물가도 3배 뛰었지만 면세한도는 17년째 그대로다. 일본의 면세한도는 20만엔(약 2000달러), 중국은 5000위안(약 800달러)이다.

지나치게 낮은 면세기준이 국민들의 탈세를 조장하는 만큼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수년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한국조세연구원은 국민소득과 자유무역협정(FTA) 확대 등을 고려해 면세 한도를 600∼1000달러로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는 과소비 조장, 계층간 위화감 조성 등을 이유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관세청은 한 발 더 나가 올 하반기부터 해외 면세점·백화점 등에서 400달러 이상 쓴 내국인의 신용카드 내역을 세관검사에 활용하는 시스템까지 준비하고 있다.

이는 관세청의 추적을 피하려고 해외 현금 구매가 늘어나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의도와 달리 세수 효과는 크지 않고 행정력만 낭비할 수도 있다. 무조건 단속만 강화하기보다는 면세 한도를 합리적으로 올리는 것이 먼저다. 수백만원, 수천만원 명품백이나 보석을 사고도 세관 신고를 건너뛰는 간 큰(?) 탈세범을 찾아내는 작업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선량한 국민들을 잠재적 탈세범으로 모는 것이 지하경제 양성화는 아닐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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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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