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창시절엔 17명을 한방에 때려눕힌 싸움의 전설이었고, 한때는 반독재 투쟁의 최선봉에서 화염병을 류현진의 강속구보다 더 빨리, 더 멀리 던져 전경 1개 중대를 혼비백산케 한 바 있으며, 군 시절엔 1km 밖의 파리 눈알을 저격하던 특등사수였다던 청년시절의 영웅담처럼, 경험에 상상력이 덧칠해져 그럴싸한 얘깃거리가 되는 게 있으니 그건 바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다.
곧 있을 유격훈련. 군대 선임병은 신병 앞에서 "피와 살이 튀는 극한의 공포였다"며 지난날의 유격훈련을 회상하면 그날 이후 신병에게 있어 유격훈련은 공포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 이처럼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은 대체로 실체보다 부풀려지기 마련인데, 그 중 필자가 경험한 것 하나가 고산병에 관한 것이다.
절친 기업인들과 함께 히말라야 트레킹을 갔을 때의 일이다. 대부분 히말라야 초행길이었던 일행들이 준비기간에 가장 궁금해 했던 것은 고산병이었는데,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두통이 심해진다던데" "토하고 기절하기도 한대요" "드물긴 하지만 호흡곤란이 오기도 한다면서요?"라는 대화들 속에 고산병은 서서히 우리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혈관확장제로 개발된 비아그라가 고산병 예방에 탁월하다는 의견이 있었고, 마침 일행 중 비아그라 처방을 받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결국 그의 도움으로 모두 한 알씩 지급받아 두려움을 달래며 우리는 트레킹을 시작했다. 등반 나흘째, 두통과 약간의 불편함이 시작된 해발 3500m 지점에서 우리 모두는 비아그라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닷새째 되던 날, 밤새 고산병에 시달린 지친 몸을 끌면서 최종 목적지인 4300m 고지를 밟고서 벅찬 감동을 느낀 후 하산하여 저녁식사를 하던 나는 "유레카"를 외쳤다. 자기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전날부터 두통을 호소하던 일행들이었건만 약속이나 한 듯이 비아그라를 단 한 명도 복용치 않았으며, 그 이유는 모두가 "고산병을 경험해봐야 어떤 것인지 알 것이고, 그래야 다음부터 예방약을 먹든 말든 할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마치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이끌려 난파되는 상황을 막고자 선원들의 귀는 막았으되 자신만큼은 돛대에 몸을 묶은 채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기어이 들었던 것처럼, 히말라야를 함께 한 기업인들 모두는 그렇게 미지의 두려움이었던 고산병을 피하지 않고 맞서서 체험하고 이겨낸 것이었다.
성공의 의미는 주관적 가치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분야에서 확실한 영역을 구축한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바로 '두려움에 대처하는 그들의 남다른 자세'에 있음을 그날 발견한 것이다.
귀국하자마자 나는 히말라야에서 경험한 '비아그라 미복용 사건의 전말'과는 너무도 상이한 우리의 현실과 마주했다. 대학 입학 지원서를 쓰는 조카가 스펙란을 많이 채워야 하는데 써 넣을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관리된 스펙'들이 많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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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궁금해졌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밤 별 보며 좀비처럼 학교와 학원만을 오가야 했던 학생들에게 무슨 스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인가? 경험은 본디 내 삶의 역경을 헤쳐 나가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며, 때문에 '나의 성공은 부모들의 관심으로부터가 아니라 방치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라는 성공담이 나오는 것인데, 불면 훅하고 날아가버릴 급조된 경험들이 우열을 가리는데 얼마나 기여한다는 것인가. 입학지원서에 무심코 그어진 스펙란의 칸 수만큼 우리의 미래이며 희망인 청소년들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들을 허비하고 있음에 나는 좌절하는 것이다.
유격훈련의 공포든, 고산병의 두려움이든, 경험은 두려움의 실체를 벗기고 극복하게 한다. 그런 연후 내 삶의 스펙트럼은 넓어지며 내 세상의 한계 또한 확장되는데 그게 바로 인간의 참된 성장인 것이다.
기업인으로서 나는 삶의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과 함께 일하기를 소망한다. 출신 학교나 스펙은 나의 관심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폭이 협소할수록 우연한 사건이 인생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된다"는 버트런드 러셀의 말을 경험을 통해 절대 공감하기 때문이며, 다양한 경험을 해 본 사람들이 우발적이고 다양한 문제들을 훨씬 잘 해결하는 것을 현장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자녀의 성공이 남은 삶의 가장 큰 소망이 되어 버린 이 땅의 부모들에게 말하고 싶다. 목적한 4300m 고지까지 올랐다는 성취감과 쏟아지는 별에 취했던 히말라야에서의 그날 밤, "바닷가의 모래가 부드럽다는 것을 책에서 읽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맨발로 느끼고 싶은 것이다. 감각이 느껴보지 못한 일체의 지식이 내겐 무용할 뿐이다"라며, 경험하지 않은 지식의 무용함을 말한 앙드레 지드의 말이 성공한 사람들의 이력이기도 하다는 것을 확인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