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공약은 무조건 지키는 것이 선은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운하를 포기했을 때 대다수 국민들은 박수를 쳤다. 이 전 대통령 본인 말고는 아쉬워하는 사람도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기초(노령)연금 공약은 다르다. 선거기간 중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약속하는 수만 개의 현수막이 걸렸고 이것 때문에 당선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 만큼 지지와 기대가 컸던 공약이다.
이 공약은 반드시 수정 없이 지켜져야 한다. 박 대통령은 후보시절 기회 있을 때마다 복지국가 건설이 본인과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소망이라고 말해왔다.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으로서 신뢰를 확인하는 '진실의 순간'이다.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이라는 깔끔한 기초연금안을 제시하는 것은 진보-보수를 떠나 한국이 복지후진국 오명을 벗고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출발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크다.
사실 인수위 시기 여러 잡음이 흘러나올 때부터 박 대통령이 표가 아쉬워 경쟁자의 공약을 덥석 문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기는 했다. 구체안을 만들어 보라고 임명된 사람들은 물건 값 흥정하듯 덜 줄 방법이 없나 궁리해왔다. 원래 약속대로 하겠다면 재원 마련 방안만 강구하면 되는데 '국민연금행복위원회'라는 자문기구를 만들어 기초연금 시안을 만들어 보라는 발상자체가 이상했다.
이쯤에서 모두가 기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볼 시점이다. 기초연금제도를 가진 나라가 많은 것도 아닌데 왜 우리는 일부 언론이나 지식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세금으로 조달되고 모든 노인에게 정액으로 지급되는, 수정 없는 기초연금을 요구하는가?
첫째, 노인빈곤문제의 심각성 때문이다. 중위소득 50%미만의 빈곤층 노인이 45%에 이르고 노인자살률 OECD 1위라는 오명을 상기하자. 노인을 천시하는 나라는 인간을 천시하는 나라이다. 국가의 품격 운운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어렵다.
이 나라를 선진국 문턱까지 올려놓기 위해 세계사적으로 유래가 드문 '희생의 숭고한 전범'을 보여준 세대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을 보여야 한다. 하루 빨리 기초연금을 비롯한 노인복지를 충실화해야 한다. 2050년이 되어도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이 은퇴자의 50%에 불과하다. 더구나 평균 가입기간이 25년 정도밖에 안돼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25%(현재 연금으로 평균 50만원)밖에 안된다. 품위 있는 노후는커녕 장기간 최소한의 생계도 불가능한 노인의 비중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둘째, 왜 그러면 기초생활보장 같은 공적부조 제도를 강화하여 노인빈곤층 해결에 집중하지 기초연금 같은 돈 많이 드는 일종의 '사회수당'을 들고 나오는가? 그 이유는 연금은 일하는 동안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사회의 의무이고 또 은퇴세대의 떳떳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품위 있는 노후를 누릴 권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거지에게 동냥하듯이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사람에게 동정을 베푸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더 이상 노후를 개별 가정이 책임 질 수 없으며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사회적 합의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의 PICK!
왜 70-80%가 아니고 모든 노인에게 지급되어야 하는가? 모든 기본권이 그러하듯 연금 같은 사회적 기본권도 보편적이어야 하며 차별을 두면 안 된다. 부자라고 차별하면 결국은 기초연금제도는 위축되고 만다. 몇 푼 아끼려하다가 근본을 망친다. 그래야 사회적 연대의식이 극대화되며 부유한 사람들이 받는 연금의 몇 배로 세금을 내려한다.
복지지출에서 OECD의 평균이라도 가려면 매년 복지지출이 지금보다 100조 이상 많아야 한다. 보수언론의 논조로 보자면 이렇게 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의 재정이 거덜 나고 망해 있어야 마땅하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기초연금 20만원(또는 엄밀히 A값의 10%), 국민연금 다 합친 부담은 2060년이 되어도 약 GDP대비 10%로 추정되는데 이는 타국과 비교했을 때 국민경제에 큰 부담이 안 된다. 모든 것이 의지가 없으니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여당은 한국이 마땅히 가야할 미래의 편에 서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