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중독법' 제정에 대한 우려

[기고]'중독법' 제정에 대한 우려

신성만 한동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2013.10.31 14:50
신성만 한동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신성만 한동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31일 국회에서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이하 중독법)'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마약, 알코올, 인터넷게임, 도박을 4대 중독으로 규정하여 국가에서 통합적으로 예방하고 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골자다. 늦은 감은 있지만 중독문제에 대해 국가에서 관리하겠다는 점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 제안된 중독법과 관련하여 중독분야를 연구하는 전문가로서 크게 우려가 되는 점들이 있다.

2012년 OECD가 보건복지부와 공동으로 한국의 중독치료 서비스를 포함한 정신건강 서비스체계를 조사했고 그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올해 4월 국회에서 국제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이 세미나에서 OECD 자문관인 수잔 오코너(Susan O’Connor)는 한국의 정신건강체계에 대해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세 가지를 권고하였다.

첫째, 입원중심의 치료에서 이용자 중심의 지역사회기반 치료로 전환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한국의 높은 병원 입원일수와 입원중심 치료는 대다수 OECD 회원국들의 추세와는 정반대인 시대역행적 접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제안된 중독법은 이러한 문제점을 다시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즉, 이 중독법의 제안이유를 기술한 첫 단락에 “333만명이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중독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중독영역별 전문 치료센터를 활용하기 보다는 다시 ‘중독관리센터’를 설치하여 상담만 하고 치료는 병원으로 연계하는 역할을 하도록 제한하고 있어 병원중심의 의료모형에 기반을 둔 법안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중독의 원인은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생물학적 원인뿐만 아니라 심리적 및 사회문화적 원인이 결합되어 발생된다는 것(생물-심리-사회적 모형)이 중독관련 학계에서 입증된 사실이다. 따라서 치료에 있어서도 심리적 치료, 사회문화적 접근, 그리고 생물학적(즉 약물) 치료가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중독에 대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 및 도박 중독과 같은 행위중독은 심리학적 및 사회문화적 치료의 비중이 더 높다는 것을 감안할 때 큰 병원과 같은 역할을 할 중독관리센터 중심의 의료모형은 시대 역행적일 뿐만 아니라 부족한 의료보험 재원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둘째, 지역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심리치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치료적 개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중독, 특히 행위중독(인터넷 및 도박중독)은 해독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알코올이나 마약중독과 비교하여 신체적 질환 문제가 심각하지 않기 때문에 지역사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심리사회적 접근이 더욱 일반적이다. 영국에서도 지역사회의 치료인력을 대상으로 동기강화적 접근을 비롯하여 인지행동치료법을 교육하고 이들을 지역사회 치료센터에 배치하여 지역사회에서의 심리치료에 대한 일반 국민의 믿음을 향상시킴으로써 치료접근성과 치료효과를 높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기반 치료에 전향적인 재정투입(적절한 인건비 포함)을 해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중독에 대한 치료는 숙련된 기술과 지식이 요구되고 있으므로 전문적 치료인력과 서비스 환경을 구축하는데 안정적인 재원 마련이 필수적이다. 영국에서는 매년 7조원을 치료인력에 투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중독과 도박 중독 영역에서는 원인 제공자인 사업자로부터 일정액의 부담금을 부과하여 예방 및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서비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현실이다.

알코올중독 영역에서는 주류업자들에게 부과할 수 있는 건강세가 해결되지 않으면 치료에 대한 재원이 부족하여 현재와 같이 사례관리 및 병원 중심의 접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인터넷 중독이나 도박 중독 영역의 재원으로 알코올중독 영역에 함께 사용한다면 현재 각 중독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서비스 수준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OECD가 뼈아프게 지적한 한국의 서비스체계에 대한 문제점과 권고에 대해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OECD에서 지적한 것처럼 중독문제는 더 이상 어느 한 부처에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관련 부처들의 관심과 역량을 지속적으로 끌어올 수 있도록 통합 중독관리센터를 또다시 설치하기 보다는 현재의 중독영역별 치료센터들의 전문성을 더욱 강화하면서, 각 부처 관리기관들 간의 정책적 협력과 조정을 적극적이면서 유연성 있게 중재하는 협의체 성격의 중독관리위원회를 국무총리실에 두는 것이 OECD의 냉엄한 경고에 대한 합리적인 반응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법안에는 법안의 당사자인 중독자와 중독자 가족들의 필요와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들 당사자들이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중요한 요구사항은 중독재활과정을 체계적으로 도와주는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중독의 문제로부터 해방되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재활적 개입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므로 이들에게 필요한 교육, 직업, 주거 등과 관련한 재활과정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서비스 시스템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직업재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중독회복자의 경우 직업재활이 적절히 이루어진 사람과 비교하여 재발이 쉽게 일어난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그리고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재활 과정을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살펴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중독자 재활 과정에 대한 지원체계가 법률적으로 반드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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