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의 실업률, 10.3%의 높은 저축률, 넘쳐나는 경상흑자로 상징되는 독일 경제의 저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독일이 유럽의 병자에서 유럽 경제의 구세주로 화려하게 변신한 것은 뼈를 깎는 경제개혁의 고통을 감내했기 때문이다. 슈뢰더 사민당 정부는 지지세력인 노조와 좌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하르츠 입법과 '어젠더 2010 개혁'을 밀어붙였다.
창업을 장려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대폭 늘렸고,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해고를 자제하고 정부는 보조금으로 단축된 근로자 임금을 보전했다. 실업급여 기간을 단축하고 복지급여도 축소하는 등 생산적 복지시스템과 책임 있는 고용 관행을 재정립했다. 구조개혁을 통해 고용유연성과 생산성을 되살린 것이 경쟁력 회복으로 이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수출 중심의 건실한 제조업이 효자 노릇을 해냈다. 제조업은 국내총생산의 1/4를 차지하며, 제조업 수출비중은 3/4에 달하고 있다. '히든 챔피언'이라 불리는 중견기업 미텔슈탄트의 선전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종업원 500명, 매출액 5천만 유로 이하의 중소기업으로 고용, 생산, 수출의 61%, 52%, 19%를 차지하고 있다.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은 7.7%로 대기업 5.8%를 상회한다.
정부도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펴왔다. 2006년 핵심역량 강화, 전문인력 양성, 창업·융자 지원 등 7대 지원과제를 선정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대·중소기업 간 협업이 잘 작동되어 시장선도 기술이나 첨단기술 확보에 우위를 점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식 직업훈련제도도 간과할 수 없다. 이론교육과 실습교육이 연계되는 이원적 직업훈련이야말로 독일식 장인기술주의의 원천이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탄탄한 기술로 중산층의 삶이 보장되는 사회시스템 역시 든든한 버팀목이다. 프라운호퍼, 막스프랑크 연구회가 중심이 된 산학연 협력이 기초기술부터 첨단기술까지 아우르는 촘촘한 기술가치 사슬을 형성하고 있다. 노사 공동결정 시스템은 협력적 노사관계를 지탱해주고 구조조정에 따른 노사갈등의 완충제 역할을 한다.
독일의 정치적 리더십도 일조했다.
총리의 평균 재임기간이 8년이나 돼 안정적 국정운영이 이뤄졌다. 정당 간 연정이 불가피했기에 상생, 타협의 정치가 자리 잡았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 교수가 주장한 바처럼 포용적 정치제도가 자본가와 근로자 사이의 협력적 신뢰관계를 가능케 했다. 신중과 실용으로 상징되는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에도 후한 점수를 줘야 한다. 그녀는 질박하고 근면한 독일정신을 대변하며, 예측가능한 점진적 개혁주의자다.
향후 독일 경제가 직면할 도전은 만만치 않다. 우선 연정 파트너로 유력시 되는 사민당이 요구하는 최저임금제 채택 문제가 있다. 메르켈은 임금은 기업과 노조가 협의해서 정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내수경제 활성화를 강조하는 사민당과의 연정을 위해서는 일정부분 양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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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인구증가 둔화 문제다. 현재와 같은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40년경에는 프랑스 인구가 독일을 추월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도 프랑스보다 높은 노령인구 비율이 갈수록 벌어질 전망이다. 메르켈은 지금까지 독일 국민의 신중한 재정운영 요구와 유럽 경제재건을 위한 독일의 역할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독일이 한 발짝 양보해야 된다는 주장이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첫째로 제조업이야말로 경제성장과 고용의 추동력이라는 점이다. 우리 제조업의 경제성장 기여율은 거의 40%에 달하는데 이는 미국(13.4%), 독일(29%)을 능가한다. 둘째로 건실한 재정운영이다. 우리의 국가채무 비율은 40% 미만이지만 공공기관 부채가 500조원을 넘어서 낙관은 금물이다. 건전한 재정 없이 경제재건은 없다는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상의 엄중한 경고를 유념해야 한다.
셋째로 고용의 유연성과 협력적 노사관계다. OECD 분석에 따르면 고용구조가 유연할수록 기업의 일자리 창출능력이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경제의 성과는 고통스런 개혁의 값진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