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 세월호 비극과 절망사회

[MT 시평] 세월호 비극과 절망사회

김원섭 기자
2014.09.19 07:42
김원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김원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최근 들어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용어가 쏟아진다. 이는 처음에는 피로사회, 과로사회 등 생활 일부분의 문제를 확대해석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이제는 위험사회, 병리사회, 재난자본주의 등 사회의 존립 자체의 어려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그 중에서 절망사회는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절망사회는 사람들이 고통 속에 살면서도 이를 벗어날 수 있는 어떤 희망도 보지 못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분노하며 자신을 파괴하는 것 외에 어떤 다른 미래의 전망을 가질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세월호사태 이후 절망사회 도래를 예감한다. 사람들의 절망은 세월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전복된 소위 '교통사고'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전원 구조라는 소식에 대견해하며 우리 사회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 번 다지는 계기로 삼고 있었다. 300명 넘는 승객이 여전히 구조되지 않고 죽음을 목전에 뒀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에도 국민들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에어포켓'이나 '다이빙벨'과 같이 잘 알지도 못하는 어떤 것이 사람들을 살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믿었다.

심지어 사망자 명단이 끝내 확정되었을 때조차 분노보다 슬픔이, 비난보다 위로가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심지어 이 일을 계기로 국가를 완전히 개조하자는 지방선거 이슈조차 유족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동안 사람들은 해양경찰이 사람들을 구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청해진해운이 이익을 위해 승객들의 생명을 경솔히 희생시켰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관피아와 같은 특권들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버리지 못한 많은 악습도 이 비극에 책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관계된 것들이 너무나 복잡하고 많아서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 중에서도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절망의 역습은 이때 시작됐다. 죽음의 앞마당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는 세월호 유가족이 마지막으로 기대한 진상규명의 희망이 배신당하기 시작했다. 진상조사의 최선의 방법들은 정부와 여당에 의해서도, 야당에 의해서도 온전히 수용되지 않았다. 대통령은 멀리서 날아온 교황보다 세월호 유족들의 아픔에 관심이 없었다. 야당도 웬일인지 내부에서 스스로 분열하고 쪼개졌다. 한결 같은 줄 알았던 사람들의 마음도 둘로 갈라졌다. 어떤 이에게 세월호는 어쩔 수 없는 교통사고이자 빨리 잊어버려야 하는 귀찮은 일에 불과하게 되었다. 심지어 세월호 유족의 고통을 경제를 해치는 못된 일로 매도하고 조롱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나라 전체를 개조하겠다던 정부도 아무 한 일이 없이 일방적으로 세월호 사건의 종결을 선포했다.

진실을 알게 된다고 절망과 배신감에 빠진 사람들의 고통이 갑자기 없어지지는 않는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고통은 모든 생각과 행동을 흡수하는 일상적인 절망이다. 이런 고통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진실을 제대로 알게 되면 사람들은 최소한 이해는 하게 된다. 왜 자신들이 이런 고통 속에 있는지. 그리고 이해를 하게 되면 언젠가는 고통이 줄어들어 지난날처럼, 이 일을 겪지 않은 사람들의 오늘처럼, 고통 없이 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 날이 단 하루라도 말이다. 그래서 진상규명은 이들에게 중요하다.

더구나 세월호 유가족의 투쟁은 더 이상 그들 가족의 일만이 아니다. 세월호 비극이 경과하면서 많은 국민이 같이 상처받았다. 이들은 또한 이러한 사고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미래를 불안해한다. 그리고 이들은 국민들의 불안을 방치하고 외면하는 정치권을 불신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절망을 극복할 희망을 찾기 전까지는 세월호 비극으로 도래하는 절망사회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천상희 기자

안녕하세요. 편집국 천상희 기자입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