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갱님을 거부한다"…직구족들의 '개미지옥' 행복 예찬

"호갱님을 거부한다"…직구족들의 '개미지옥' 행복 예찬

송지유 기자
2014.09.29 06:20

[우리가 보는 세상]무너진 쇼핑 국경…국내 유통산업 경쟁력 키우려면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점점 단가가 커진다', '할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도박이나 마약 얘기가 아니다. 최근 2∼3년새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는 해외 직구(직접구매) 얘기다.

해외 직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한 후배는 "처음엔 비타민 몇개 사려고 (직구를)시작했는데 요즘은 주방용품에 옷, 구두, 가전제품까지 산다"며 "일주일에 2∼3개씩 미국 쇼핑몰에서 보낸 택배 박스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열풍이다. 의류와 신발, 핸드백은 물론 건강식품, 화장품, 상처용 연고, 물티슈 등 소소한 생활용품까지 해외 쇼핑몰에서 산다. 심지어 국내업체가 만들어 해외로 수출한 TV와 자동차를 다시 한국으로 들여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해외 직구 규모는 1조원(1120만건)을 넘어섰다. 올해는 2조원(1800만건)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쇼핑족 10명 중 4명은 직구를 경험했다고 한다.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40조원)의 5%로 규모는 작지만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일상생활로 스며 들고 있다.

해외 직구를 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국내에 없는 희귀한 제품을 사고 싶거나, 국내보다 해외에서 훨씬 싸게 판매하는 제품을 구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짚어봐야 할 점은 가격 왜곡 때문에 직구족이 늘어나는 현상이다.

동일한 제품인데 한국 판매가를 미국, 일본, 유럽 등보다 적게는 2∼3배, 많게는 4∼5배 비싸게 책정하니 소비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직구를 하면 국내에서 130만원에 판매하는 프리미엄 패딩재킷은 80만원이 안되는 값에 살 수 있고, 국내 가전업체의 대형 TV도 100만원 이상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이는 영어 주문에 관세와 운송료를 따로 지불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뚫고 직구를 시도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는 이유다. 상품이 파손됐거나 고장났을 때 반품이나 환불, A/S가 쉽지 않은데도 직구의 가격 경쟁력이 이 모든 부작용을 상쇄하는 것이다.

인터넷,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발달로 쇼핑, 가격 국경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똑같은 제품을 미국에서, 유럽에서 각각 얼마에 파는지 금세 확인이 가능하다. 해외에서 제품을 들여와 수십배 비싼 값에 팔아도 소비자들이 줄을 서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번 발을 들여 놓으면 헤어나올 수 없다고 해서 해외 직구를 '개미지옥'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최근엔 착한 가격과 친절한 한국어 서비스로 무장한 해외 쇼핑몰까지 등장하고 있다. 국내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간 아이들이 마을에서 자취를 감춘 것 처럼 지금처럼 손놓고 있다간 해외 쇼핑몰로 눈돌린 소비자들을 영영 놓칠 수도 있다. 처음이 어렵지만 그 다음은 쉽지 않은가. 직구도 마찬가지다.

직구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으로 유통 산업의 한 축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정부와 업계 모두 국내 유통구조에 경쟁제한적인 요인은 없는지, 과도한 판매수익이 문제는 아닌지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내수의 첨병인 유통도 더 늦기 전에 세계를 상대로 경쟁할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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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유 기자

국내외 벤처투자 업계와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한 발 더 나간, 한 뼘 더 깊은 소식으로 독자 여러분과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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