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 지역혁신센터에 대한 오해

[MT 시평] 지역혁신센터에 대한 오해

정재훈 기자
2014.10.21 07:11
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프랑스 와인이 유명한 것은 천혜의 날씨와 양조기술을 보유한 보르도 지방 덕분이고 미국이 세계적 벤처의 산실이 된 데는 기업가정신을 키워주는 실리콘밸리 덕분이다. 보르도나 실리콘밸리의 명성이 국가의 브랜드파워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지금은 잘 키운 지역의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이른바 '글로컬'(glocal) 시대다. 이처럼 국가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의 고유한 혁신역량을 어떻게 키우느냐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역의 혁신역량을 키우기 위해 1990년대 후반부터 중앙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지역산업 지원사업을 추진해왔고 지역혁신센터(Regional Innovation Center) 구축도 그 일환이었다.

RIC는 지역에 있는 기업들의 R&D(연구·개발) 활동을 지원할 목적으로 전국 주요 대학에 R&D 관련 인프라를 설치한 공간이다. 기업들이 기술개발 과정에서 장비와 인력, 전문역량이 필요할 때 원하는 자원을 지역 내 인접 대학에서 손쉽게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는 것이었다. 기업들은 RIC를 찾아가면 연구에 필요한 장비를 쉽게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에 소속돼 있는 교수들에게 기술자문을 받기도 한다. RIC는 자체 혁신역량이 아직은 부족한 지역 중소기업들에 하드웨어적 지원과 소프트웨어적 지원을 모두 제공함으로써 지역 내 훌륭한 R&D 도우미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일부에서는 RIC가 테크노파크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대학에 설치된 창업보육센터, 지역별 특화센터와도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테크노파크는 지역산업 발전전략 수립과 지역내 기업과 혁신기관간 중개기능을 하고 있으며 창업보육센터는 예비창업자에게 창업공간을 제공하고, 특화센터는 지역별 특화산업 육성을 위한 기업지원을 담당하는 등 기관별로 설립목적과 기능이 서로 다르다.

'혁신센터'라는 좋은 이름 때문에 종종 다른 혁신지원기관들과도 혼동되기 쉽지만 현재 운영되는 RIC는 전국 70개 수준이다. 당초 127개였던 RIC는 그간 기관간 역할 중복 방지, 지역수요 기반 변화 등에 따라 57곳이 통폐합되었고 남아있는 RIC 중에서도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센터 수는 현재 28개 정도며, 그마저도 2018년에는 정부지원이 완전히 종료되고 자립화의 길을 걷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3년간 특허출원은 220% 증가하고, 공동 R&D와 기술이전 사례도 각각 131%, 172% 늘어나는 등 RIC의 기업 지원역량이 오히려 향상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일반 R&D 연구과제나 산학협력 과제는 보통 정부지원이 종료되면 사업주체가 사라지지만 RIC는 정부의 재정지원 없이도 구축해놓은 인적·물적 인프라를 활용해 여전히 지역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RIC가 국고를 축내는 무의미한 투자처럼 세간에 비쳐지는 것은 지역의 혁신을 지원하는 다양한 기관들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각 지역의 산업기반이 현 체계를 갖추게 된 데는 각 지자체와 정부출연연구소는 물론이고 테크노파크, RIC, 창업보육센터, 산업단지 등 다양한 혁신지원기관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다. 각 기관은 지원하는 대상이나 지원범위, 구체적인 역할이 서로 다르지만 '지역경제의 활력 제고를 통한 고용창출'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같이 뛴 덕분에 기업의 혁신역량도 발굴하고, 지역산업이 자생하며 발전할 수 있는 토대도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미래부가 산업부와 협조해 야심차게 추진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도 기존 조성돼 있는 지역의 혁신인프라를 잘 활용해 소프트한 지원수단을 연계하면서 상호 보완·협력해나갈 때 의미 있는 성과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에 있는 기업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는 20년 동안 기업 현장 가까이에서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전해준 혁신지원기관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역기업들의 혁신수요를 토대로 제일선에서 지역산업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이들을 향해 지금은 질책보다 힘찬 응원을 보내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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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희 기자

안녕하세요. 편집국 천상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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