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머리띠 두르던 재래시장 상인들의 웃음

[우리가 보는 세상]머리띠 두르던 재래시장 상인들의 웃음

송지유 기자
2014.11.03 06:40

정부, 막대한 예산·대형마트 규제로도 결실 못 이뤘지만…진정성 있는 시도가 불러온 한달만의 변화

서울 광진구 중곡제일시장 상인들은 요즘 연신 싱글벙글이다. 시장 안에 있던 기업형슈퍼마켓인 이마트 에브리데이(SSM)가 지난 9월 매장에서 신선식품을 모두 철수한 이래 과일이나 채소, 수산물 등을 파는 상인들의 매출이 2∼3배 이상 늘었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원래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던 중장년층 단골고객 외에 20∼30대 젊은 손님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각 점포에는 젊은 손님들이 즐겨 찾는 파프리카와 브로콜리 같은 고급 채소와 열대 과일이 등장했다.

신세계는 이마트 에브리데이에서 신선식품을 철수시키면 매출이 최대 30%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는 10% 줄어드는데 그쳤다. 고객수가 감소하지 않은데다 신선식품이 빠진 자리에 대체 상품들을 채워 넣었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이 과정에서 고객 뿐 아니라 전통시장 상인들의 의견까지 반영했다. 손님들이 많이 찾지만 전통시장에는 없는 품목을 간추려 매장을 꾸몄다. 애견용품과 문구류,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스포츠용품 등이 대표적이다. 전통시장에서 팔기 쉽지 않은 수입 과자나 음료 등도 상품 구색을 늘렸다.

에브리데이 매장 입구에 시장 지도와 채소, 과일, 수산물 등 가게 위치를 표시해 고객들이 헛걸음을 하지 않도록 했다. 처음에는 매장에서 사라진 신선식품을 찾던 고객들이 요즘은 에브리데이에서 장을 보고 자연스럽게 시장 안 채소 가게나 과일 가게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런 중곡제일시장의 시도는 먹거리 중심의 전통시장과 생활용품 구색이 더 다양한 기업형슈퍼마켓의 강점을 살려 시너지 효과를 내려는 것이다. 대형마트라면 무조건 반감을 드러내던 상인들도 함께 잘해보자며 마음을 열었고, 매출을 포기한 신세계의 과감한 결단도 한 몫 했다.

이렇다보니 시장 상인들은 에브리데이에 손님들이 많이 와야 자신들의 매출도 좋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요즘은 아예 시장 상인들이 "에브리데이의 뒷문을 개방해 손님들이 시장으로 더 빨리 올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할 정도다. 일부 상인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에브리데이 의무 휴업일인 매달 둘째, 넷째주 일요일에 손님들이 눈에 띄게 적어지니 휴업일을 평일로 옮겨 달라"고 건의하기도 한다.

정부가 재래시장 상권을 활성화하겠다며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나라 예산을 2조원 가까이 투입했으나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유통산업발전법을 뜯어 고쳐 대형마트 신규 출점을 막고, 일요일에 강제로 문을 닫게 했지만 이 또한 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전통시장 매출은 2009년 22조원에서 지난해 19조9000억원으로 되레 줄었다. 정부가 돈을 쏟아 부어 시설을 현대화해도 시장 매출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그러나 중곡제일시장은 막대한 예산을 들이지도 않았고, 대기업의 발목을 묶지도 않았는데 큰 결실을 이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신세계는 중곡점 외에 전통시장 안에 있는 일산점에서도 최근 신선식품을 모두 다 뺐다. 연내까지 면목점과 사당점에서도 신선식품을 매장에서 자진 철수할 계획이다.

판에 박힌 생색내기용 상생이 아닌 진정성 있는 시도여서 더 의미가 있다. 대형마트나 기업형슈퍼마켓이 들어선다면 머리띠부터 두르며 반대하던 전통시장 상인들이 이제 한발씩 양보하며 자신들의 실리를 추구하는 이런 모습은 정부가 적극 장려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곱씹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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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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