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카산드라가 되었나

우리는 어떻게 카산드라가 되었나

양영권 기자
2014.12.04 06:30

[우리가보는세상]자원개발 문제점 지적 본지 보도 귀막은 정부·석유공사, 지금은…

한국석유공사의 하베스트 에너지 인수의 문제점을 단독 보도한 2009년 10월29일자 머니투데이 1면.
한국석유공사의 하베스트 에너지 인수의 문제점을 단독 보도한 2009년 10월29일자 머니투데이 1면.

"상장회사이기 때문에 재무현황은 정확하게 공시돼 있습니다. 실사과정에서 부채상황 등을 면밀히 파악했습니다."

2009년 10월29일, 경기 안양시 평촌동에 있는 한국석유공사 사옥에서 열린 석유공사 이사회에서 참석자가 한 발언이다. 캐나다 자원개발회사 하베스트에너지와 그 하류부문(석유정제) 자회사 NARL을 묶어 40억7000만달러(NARL의 가격만 9억3000만달러)에 인수하는 안건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최성룡 감사가 인수에 따른 잠재 손실 가능성을 묻자 이사진은 "상장회사로 정보가 다 공개돼 있다"며 일축했다.

장담은 허언이 됐다. 석유공사는 지난달 NARL을 8600만달러(약950억원)에 매각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매매차손만 9000억원 넘게 보게 됐다. NARL은 석유공사에 인수된 후 5년간 당기순손실이 1조4455억원에 이른다. NARL 인수에 따른 석유공사의 총 손실은 1조7149억원으로 추정된다.

천문학적 손실을 피할 수는 없었을까. 단언컨대, 100% 가능했다. 당시 이사회에서 보고자가 밝힌 대로 하베스트가 상장회사였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와 석유공사가 2009년10월 하베스트 인수를 발표했을 때 머니투데이는 하베스트의 경영 현황에 비춰 47%에 달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과도하며, 정제부문(NARL)의 부실로 추가 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잇따라 내보냈다.

캐나다 증시에 올라온 보고서를 분석하고 현지 언론, 국내 M&A 업계 등을 취재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 지적에도 석유공사는 딜클로징(매각 완료)을 강행했다.

머니투데이가 졸지에 그리스 신화의 '들어주지 않는 예언'을 하는 카산드라가 돼야 했던 것은 이 사례뿐이 아니다.

2009년 2월 석유공사가 콜롬비아 석유회사 에코페트롤과 공동으로 페트로테크(현 사비아 페루)를 인수했다고 밝히면서 공개한 인수 가격이 대폭 축소됐음을 그해 11월 단독보도한 것이 그 중 하나다.

당시 정부는 가격을 9억달러로 밝혔지만, 계약서에는 유가가 배럴당 70달러를 돌파할 경우 3억달러를 추가 지불해야 한다는 조항이 존재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석유공사는 지분 50%를 인수하는데 당초 밝혔던 4억5000만달러에 1억5100만달러를 추가해 총 6억5100만달러를 최종 지불해야 했다. 석유공사는 이 회사 매각을 추진 중이지만 실적 부진으로 가격이 크게 떨어져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다.

비슷한 과오를 반복한 것은 성과주의에 매몰된 결과다. 하베스트 인수와 관련해 열렸던 2009년10월14일 석유공사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손익 검토보다는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사회에서는 "인수 건을 발표할 때 홍보계획을 잘 세워야 될 듯하다. 공사가 국제적인 회사로 발전 중이라는 취지의 대외 홍보에도 신경써야 한다"는 지침이 내려졌다.

'잘된 홍보' 덕분이었는지 그 시점에 과오를 가릴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5년이 흐른 현재 석유공사는 '글로벌 호구'라는 조롱을 받고 있다. 자원개발 사업은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실정(失政)'으로 거론된다. 거듭된 지적을 '뭉갠' 결과다. 국민의 혈세를 다루는 일을 하는 모든 이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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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권 기자

머니투데이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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