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가 되고 싶다며 '성공의 길'을 물었던 재은아. 이 아저씨는 말없이 웃기만 했지. 나와 너의 삶이 다르거니와 한계에 길들여진 내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네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삶이란 경험이 전부이기에 '과감히 길을 잃어 보는 것'을 조언할 텐데, 지름길을 찾는 네가 수긍할까? 이런저런 이유로 미룬 네 질문에 이제 답할 때가 된 것 같구나. 한 해가 저물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이 성공일까? 네 질문처럼 높은 지위나 부의 성취가 성공일까? 아저씨도 '부자되는 것=성공'이라는 생각에 자기계발서를 닥치는 대로 섭렵한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살아보니 그 책들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더구나. 성공을 위한 첫 걸음은 마음가짐이나 습관이 아니라 '성공에 대한 자기만의 정의'를 내리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타인이 만든 성공의 기준을 따르는 삶은 유인원의 삶이라는 말은 그래서 경청할 만하다. 현자 에머슨이 내린 성공의 정의는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란다.
성공에 대한 너만의 정의를 내렸다면 절반은 된 것이니 이제 삶속으로 걸어가자. 배낭 속에 세 가지만 넣어주렴. 첫째, '선택과 만남'이다. 삶이 부조리하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와 그 길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네 인생은 많이 달라질 거야. 네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야 해. 수의사가 되고 싶은데 주위의 기대 때문에 물리학자의 길을 걷는다면 정상에서 만나는 건 기쁨이 아니라 허탈감일지도 몰라. '무엇이 될 것인가'보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숙고하렴. 이는 선택의 판단에도 유용하며, 만남을 결정짓는 좌표로서도 기능하거든. 그리고 선택의 길에서 만나는 인연들을 항상 소중히 여겨야 한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 자체보다 그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삶의 더 큰 선물이기도 하니까.
둘째, '신념과 지혜'다. 신념 있는 사람의 눈빛은 매력이 있어서 사람을 머물게 하더구나. 길을 잃었을 때 나침반과 횃불이 될 가치와 신념을 키우는 데 독서만 한 게 없다. 책을 많이 읽기 바란다. 살다보면 신념에 도전하는 일들을 끊임없이 만나게 될 텐데, 그때 네 신념과 세상을 '올바르게' 조화시키는 것이 지혜다. 조화를 변절이라 비판하거든 "사실이 바뀌면 나는 견해를 수정합니다. 귀하는 어떠신지요?"라는 케인스의 말 뒤로 숨는 것도 괜찮겠다. 열린 사고, 다양성에 대한 수용과 이해가 신념 못지않게 중요한 세상이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불행과 행복'이다. 눈길에 차가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 것. 불행이란 그냥 그런 거란다. 반갑지 않지만 흔히 마주치는 일상의 손님인 거지. 기어이 오겠다는 손님을 막으려 애쓰기보다 함께 어울리는 법을 익히는 게 낫더구나. 살면서 행여 절망이 찾아오면 마음을 차분히 하고 본질을 보아야 한다. 소나기에 흙탕물이 되어버린 연못 속을 보려면 그냥 기다려야 해.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보여주거든. 다행히도 행복이 찾아오면 그게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여기면 좋겠다.
재은아. 스스로 못났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세상은 어떤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단다. '내가 나를 대하듯 세상이 나를 대한다'는 말은 그래서 옳다. 자존감을 갖고 매 순간을 삶의 결정적 시점으로 여기며 힘차게 살거라. 아저씨도 성공에 대한 나름의 기준, 즉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으려 했고, 온전히 내 가치대로의 삶을 살았으며, 그래서 내 인생은 풍요로웠다고 말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갈 테니 말이다. 올해도 고생 많았다. 한 해 잘 마무리 하고 다가오는 새해엔 더 파이팅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