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어느 은행장의 고백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어느 은행장의 고백

김진형 기자
2014.12.14 13:00

[우리가 보는 세상]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얼마전 만난 한 은행장의 이야기다. 기업 구조조정 문제를 거론하면서 나온 발언이다. 한계 상황에 이른 기업들을 채권단이 연명시켜 주고 있는 현실이 그의 양심을 때리고 있었다.

그는 "채권단이 자율협약이라는 이름으로 채무조정을 해주고 신규 자금을 지원해 주면 산업을 왜곡시킨다"고 했다. 출자전환, 이자 탕감, 원금 상환 유예 등의 조치로 인해 사실상 퇴출 직전의 기업이 경쟁력을 갖게 되면 오히려 정상기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또 "그 돈(STX 등 구조조정 기업에 투입한 돈)이었으면 수없이 많은 중소기업들에게 자금을 지원할 수 있었을 것", "전세계 경제상황이 앞으로 5년은 더 이렇게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속될 것임을 생각하면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이 치뤄야 하는 엄청난 손실을 우려한 은행장의 엄살이라고 치부하기엔 우리의 현실이 엄혹하다. '좀비 기업'에 대한 우려는 최근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KDI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좀비기업이 전체 기업 자산의 15.6%(2013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KDI는 "금융지원으로 부실기업의 퇴출이 지연되면 이들 좀비기업이 한정된 시장수요를 잠식하고 노동 및 자본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해 정상기업의 고용 및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KDI는 특히 좀비기업 자산 비중을 10.0%p 하락시키면 정상기업의 고용을 11만명 내외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양심의 가책'을 고백한 은행장의 진단과 같은 맥락이다.

KDI의 주장에 반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경쟁력을 상실한채 연명하고 있는 기업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엄염한 사실이다. 금융감독원의 올해 중소기업 신용위험 평가에서는 125개사가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다. 작년보다 11.6% 늘었고 2009년 이후 5년만에 최대 규모였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도 부실기업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한은은 2014년 8월말 현재 10개 위험 기업집단(이자보상비율과 유동성비율이 동시에 100% 미만)을 대상으로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1개의 그룹이 부실화되면 금융권 전체 예상 손실은 6000억~6조4000억원, 3개가 동시에 부실화되면 금융기관 손실은 14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동양그룹 사태가 터졌던 지난해 "저축은행 구조조정 외에 지난 7~8년간 대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없어 부실이 계속 이연돼온 상황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재무구조개선약정과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손보고 동부, 한진, 현대 등 몇몇 대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모두 도루아미타불이다. 그저 연명시켜 준 것 뿐인 결과가 될 수 있다. 앞으로 5년 후, 누군가 '부실이 이연돼 왔다'며 신 위원장과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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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 기자

안녕하세요. 금융부 김진형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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