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 신발끈을 고쳐 매자

[MT 시평] 신발끈을 고쳐 매자

정재훈 기자
2014.12.30 07:34

올 연말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드라마가 있다면 바로 얼마 전에 종영한 '미생'이 아닐까 싶다. 원작인 만화의 캐릭터가 직접 튀어나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세심한 연출도 화제를 모았지만 무엇보다 계약직, 여성, 신입직원 등 우리 사회 약자에 속하는 이들의 애환을 현실감 있게 그려냄으로써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생'이 드라마 속 대사로 직장인들의 현실을 대변했다면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올 한 해 전국의 현장을 누비며 기업인들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박근혜정부가 강조하듯 국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KIAT가 수행하는 기업지원 정책들이 현장에서 효과를 잘 발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적어도 매주 한 번 이상은 현장을 찾아 기업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관련 정책을 설명하고 점검했다.

지역도, 업종도, 규모도 각기 다른 만큼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참으로 다채롭다. 특히 벤처·중소기업들이 정부 지원을 받아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역의 강소기업으로 우뚝 선 이야기에는 보람을 느낀다. 그중 하나가 보톡스 기업 휴젤이다. 2001년 창업한 이 기업은 전체 임직원 100여명 중 75%가량이 해당 지역 출신 인재들일 정도로 지역 일자리 창출에 한 몫한다. 그런가 하면 자동차 배관용 파이프 제조업체 한일튜브는 국제 기술협력으로 돌파구를 만든 케이스다. 국내에서는 자동차 부품 시장에서 알아주는 업체였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독일 및 프랑스 기업과 공동 기술개발에 나섰다. 2년간 공동연구 끝에 값이 싸면서도 고온을 견디는 플라스틱 자동차 배관 개발에 성공했고 이 제품으로 내년에만 수백억 원의 해외매출이 예상된다.

물론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 긴 시간을 들여 괜찮은 기술을 개발해놓고도 시제품 제작 및 마케팅에 필요한 펀딩을 하지 못해 끝내 관련사업을 접은 기업인을 만날 때는 마음이 많이 씁쓸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KIAT처럼 정부정책을 수행하는 기관들이 현장을 돌아다니며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도 느낀다. 여러 중소·중견기업이 공통적으로 고급 연구인력 유치에 대한 어려움을 지적하면서도, 막상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지원을 하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굳이 먼 길을 돌아가지 않도록 KIAT와 같은 종합기술지원기관이 앞으로 더 부지런히, 우직하게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지원책을 소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년에는 지역순회 컨설팅, 찾아가는 사업설명회 등을 확대 개최할 예정이다. 정부 정책에 신뢰를 보내주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이 많아진다면 좋은 일자리도 덩달아 생기지 않을까.

물론 기업들도 이같은 정부의 노력에 화답해야 할 것이다. 마침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내년 경영환경을 표현하는 사자성어를 조사한 결과 '필사즉생'(必死則生)이 선정됐다고 하니 내년을 준비하는 중소기업인들의 강력한 의지가 느껴지는 듯하다.

사건·사고가 많았던 2014년이지만 그렇다고 늘 우울한 소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올 한 해 적극적인 경제외교를 펼친 결과 우리나라는 500억달러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와 해외투자를 유치했으며, 중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 타결 선언으로 경제영토가 세계 3위로 확대됐다. 또한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를 걱정하는 와중에도 소재부품 무역흑자 1000억달러 돌파라는 성과를 일궈내기도 했다. 비록 그 속도는 다소 느릴지라도 세상이 조금씩 좋은 쪽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이 사회 공동체 전체로 확산될 때 내년에는 희망의 종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퍼질 수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국내외 100여곳의 현장을 찾아 500여명의 기업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 믿음과 희망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희망이 결코 근거 없는 낙관이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지금 신발끈을 다시 고쳐 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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