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도 그 끝자락을 향해 치닫고 있다. 올 해도 어느덧 몇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이맘때면 우리 사회는 지나온 한 해를 정리하며 반성과 다짐의 시간을 갖곤 한다. 이때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다사다난’했다는 표현이다. 그렇다. 올해 우리 사회는 일일이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참으로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 올해뿐이랴. 우리는 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근대의 시대를 살아왔다. 20세기 초 일제의 억압과 핍박을 시작으로 해방과 전쟁, 그리고 민주와 반민주 투쟁이라는 70~80년대의 긴 터널을 지나 오늘에 이르지 않았나.
이것은 우리가 그 만큼 치열한 삶을 살아왔고 또 살고 있는 있다는 반증이다. 결코 크지 않은 반도국으로서 우리 사회가 지금과 같은 모습과 위상을 갖출 수 있었던 것도 부침이 심한 지난 시대를 잘 견디어 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때로 심각한 갈등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러 파열음이 들리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나온 발자취를 볼 때, 오늘 이 다사다난한 시간은 사춘기 아이들의 성장통과 같은 것이어서,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처럼 보인다. 이러한 과정 없이 어찌 훌륭한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겠는가.
물론 우리의 신문이나 방송의 주요 내용을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할 듯하다. 좀 과하게 표현하면 언론에 비친 우리 사회는 이전투구 즉,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고 싸우는 사회 같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어느 사회든 그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람들만 있을 수는 없다. 우리 사회에는 분명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배려하고 협동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다. 자연선택에 의한 경쟁이 생존의 유일한 법칙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실제 다윈의 진화론은 협동을 경쟁만큼이나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 언론은 고쳐서 바로 잡아야 할 사안뿐만 아니라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가령 언론보도를 보면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는 리더는 스포츠 인사들 밖에 없는 것 같다. 그 분들의 훌륭한 리더십을 널리 알리는 일에 누가 반기를 들겠는가. 다만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곳에 훌륭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릴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라고 훌륭한 정치인, 군인, 경제인들이 없을 수 없다. 그들의 감동적인 삶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사회적 체감온도는 지금보다 더 크게 올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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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늘 의미를 강조한다. 삶에 의미가 없으면 살맛이 나지 않고, 일에 의미가 없으면 의욕이 나질 않는다. 그렇다면 의미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의미는 그 존재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것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고 느낌이다. 우리는 의미를 부여하는 돌과 나무, 식물과 애완동물,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애정과 관심을 쏟으며 자기의 것을 함께 나눈다. 반대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존재에게는 마음을 닫은 채 그들을 이기기 위해 경쟁하고 다투고 공격한다. 이처럼 우리의 경험은 의미부여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때 우리의 경험은 거의 모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이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즉 우리가 혼자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다른 존재와의 연결의식이 없으면 행복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화, 분노, 좌절과 같은 부정적 정서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러한 상태에서 나오는 그의 행동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 값싼 우월감이나 부질없는 파벌의식에서 나오는 행동이 대부분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 이 때문이다. 새해에는 좀 더 다른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우리의 인식을 높일 필요가 있다. 특히 언론이 이와 같은 역할을 잘 수행한다면, 우리 사회의 날카로운 불협화음도 좀 잦아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