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천박한 신분사회의 잔재 '갑의 횡포'…인격 존중받을 타인의 권리도 소중하다

"억울하고 분해서 요즘 잠을 통 못 자. 조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서 속상하고. 이래서 '백'이 있어야 하나봐." 오랜만에 만난 친구 A가 울분을 토로했다. 중학교 2학년인 조카가 한 선생님의 횡포로 억울하게 학교를 그만뒀다고 했다. 문제의 발단은 수업시간. 떠들고 장난친 아이들은 따로 있는데 성적이 좋지 않은 A의 조카가 대신 체벌과 벌점을 받았고 무고함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커졌다.
선생님은 "반성하는 기미가 전혀 없는데다 학생의 반항심이 커 면학 분위기를 망친다"는 쪽으로 여론을 몰았고 결국 강제전학이라는 극단의 처분으로 이어졌다. 더 큰 문제는 '불량학생'으로 낙인찍힌 A의 조카를 받겠다는 학교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해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A의 언니 내외는 아들의 학업을 당분간 쉬게하고 대안학교를 알아보고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부터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의 막말·성희롱 사건, 부천 백화점 모녀, 대전 백화점 난동녀까지 이른바 '갑의 횡포'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어서일까. 요즘 A의 조카가 자꾸만 걱정된다.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자신보다 우월한 지위의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모멸감, 학교에서 버림받았을 때의 충격과 상처가 얼마나 컸을지 생각하니 몸서리가 난다.
최근 특권층의 '갑질'과 돈을 앞세운 '진상짓'이 신문과 TV, 인터넷을 달구고 있지만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후진적인 실상이다. 천박한 신분사회의 잔재가 맷값을 지불하고 직원을 폭행한 재벌 회장, 라면을 제대로 끓여오지 않았다고 승무원을 폭행한 대기업 임원, 경비원에게 폭언을 일삼았던 강남 아파트 입주민 등을 낳았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지만 타인의 권리도 존중해야 하는 시민의식은 아직 미숙하다는 방증이다. '갑'이 아니면 '갑'을 사칭하거나 큰소리를 내야 손해보지 않는다는 인식, 돈만 지불하면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문제다. '갑'은 대접받을 권리가 있지만 '을'의 인격까지 침해할 권리는 없다. 비행기 1등석에 탄 항공사 오너 딸도, 수백만원 쇼핑을 한 백화점 고객도, 어린 학생들을 상대하는 교실 안 선생님도 말이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와 습관적인 행동이 상대방에게 모욕·모멸감을 주지 않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백화점에 쇼핑하러 갔다가 계산대 앞에 붙어있던 작은 메모가 떠오른다. '백화점 직원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당신의 가족이 사회·경제적 지위에 밀려 억울한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