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2004년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쫓아낸 금융당국의 중징계, 누가 책임지나

#2004년 여름, 금융권 최대 이슈는 국민은행 회계부정 사태였다. 국민은행이 카드 사태로 부실화된 국민카드를 흡수합병하면서 부정한 회계처리로 세금 혜택을 본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리딩뱅크 국민은행을 이끌던 스타 최고경영자(CEO) 김정태 전 행장의 거취가 달린 문제였다.
중징계하려는 금융감독당국과 반발하는 국민은행간 공방은 치열했다. 상당수의 회계전문가들은 회계처리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국제적 신용평가사인 스탠다드앤푸어스(S&P)도 '회계기준과 감독규칙간의 해석차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최종 제재도 내려지기 전에 '김 전 행장은 연임이 불가능한 중징계를 받을 것'이라고 발표했고 이례적으로 검사과정에서 입수한 국민은행 내부문건을 공개하는 강수까지 두면서 논란을 진압했다. 그리고 결국 김 전 장에게 '문책적 경고'를 내려 퇴임시켰다.
지난 15일, 대법원은 '국세청이 국민은행에 부과한 4420억원의 법인세를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국세청이 부과한 법인세는 2004년 국민은행 회계부정 사건의 결과였다. 부정회계로 감면받은 세금을 추징한 것이다. 하지만 1심, 2심에 이어 최종심까지 국세청의 완패였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김 전 행장이 물러나지 않고 연임했다면 지금 국민은행, 아니 한국 금융산업은 어떤 모습일까.
김 전 행장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 중 하나가 지배구조 개선이었다. 지난해 지배구조 문제로 홍역을 치른 후 KB금융과 금융당국이 도입키로 한 제도 중 일부는 당시 국민은행이 시행하고 있던 것이다. 김 전 행장이 추진했던 후계 승계시스템이 완성됐다면 지난해 같은 회장과 행장간 막장 드라마는 없었을지 모른다.
은행 경영에선 전통적인 영업 방식에서 벗어났다. 최대 점포망을 갖춘 장점을 활용해 은행 창구에서 각종 상품을 판매, 수수료 수익을 늘렸다. 주식형 펀드, 로또복권 열풍은 국민은행에서 시작됐다. 은행 창구 한켠에 휴대폰 판매 부스까지 설치했다. 9·11 사태로 증시가 폭락하자 5000억원을 증시에 투입, 50%의 수익률을 올리기도 했다. 지금처럼 보수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은행권의 모습과는 달랐다.
무엇보다 그는 관치에 맞선 CEO였다. LG카드 사태 당시 정부와 충돌했던 장면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물론 김 전 행장이 모두 옳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경영은 가계부채 급증, 금융의 공공성 후퇴 등의 문제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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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금융'기관'을 금융'회사'로 바꾸려 했던 김 전 행장의 '찍퇴'(당국에 찍혀 퇴임)는 이후 금융권의 스타 CEO가 하나둘 사라지고 다시 금융'기관'으로 되돌아가는 변곡점이었다.
'장사꾼' 김 전 행장은 농사꾼으로 변신해 10여년을 살다 지난해 고인이 됐다. 윤종규 KB금융 회장(당시 국민은행 부행장) 등 상당수 임직원들은 징계를 받아 죄인처럼 살아야 했다.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의 징계를 되돌릴 방법은 없다. 하지만 당시 징계를 주도했던 금융당국 인사들은 고 김정태 전 행장의 묘소라도 찾아 '잘못 쓴 칼'에 대해 사죄는 해야 되지 않을까.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제재 및 검사 혁신은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