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원 6000명의 한 기업이 있다. 그중 한 명의 직원이 회사의 경영진과 심각한 갈등이 생겼다. 문제가 발생한 이후 그 직원은 자신이(경영진에 의해) 과중한 업무에 내몰리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회사는 우연히 그렇게 되었을 뿐 결코 의도한 결과는 아니라고 항변한다. 해당 직원의 지나친 피해의식이나 의도적인 곡해에서 비롯된 오해라면 기업 경영진에게는 매우 억울한 일일 것이다. 반대로 직원이 어떤 형태로든 경영진의 보복으로 인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를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당신이 심판이라면 과연 어느 쪽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겠는가? 양쪽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어느 쪽이 확률적으로 더 가능성이 높은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알고자 하는 것은 ‘해당 직원이 과도한 업무를 맡은 상황에서, 이것이 경영진의 의도적 차별에 의한 결과일 확률’, 즉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고 가정했을 때 다른 사건이 일어날 조건부 확률이다(P라고 하자). 다시 말해 직원이 과도한 업무를 맡게 된 현재 상황으로부터 이것이 경영진이 해당 직원을 의도적으로 차별했기 때문일 확률을 역으로 추론하는 것이다.
이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다음 확률정보가 필요하다.
A : 경영진이 해당 직원을 차별할 확률(사전확률이라고도 한다). 경영진과 갈등이 심각했던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다소 보수적으로 경영진이 해당 직원을 차별할 가능성(A)을 10%로 가정해 보자.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이 90%라는 조건이므로 경영진에게 불리한 가정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경영진이 차별한다고 가정했을 때 무리한 업무를 부과할 가능성(B)을 50%로 잡자. 경영진에 의한 차별이 사실이라는 조건에서 확률 50%는 동전 던지기 수준이므로 무리한 조건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회사가 직원을 차별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연히’ 무리한 업무에 배정될 가능성(C)을 1000분의1이라고 생각해보자. 이는 전체 직원 6000명을 업무에 임의로 배정한다고 할 때 6명이 상시 이런 상황에 빠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해당 직원은 자신이 근무한 18년 동안 처음 겪는 과도한 업무라고 주장하니 실제 확률은 이보다 더 낮을 가능성이 있다).
확률론에서 자주 이용되는 베이즈정리(Bayes‘ Theorem)를 적용하면 P=A x B / [A x B + (1-A) x C]가 되는데, 위의 확률정보를 조합하면 다음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해당 직원이 과도한 업무에 배정되었을 때 이것이 경영진의 차별로 인한 결과일 확률=98.23%.
이쯤되면 위의 시나리오가 대한항공과 박창진 사무장에 관한 이야기임을 눈치챘으리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양쪽의 주장이 모두 그럴듯하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회사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은 1.77%에 불과하다. 상식적인 범위에서 위의 확률정보들을 다소 수정하더라도 회사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이 상황을 뒤집을 만큼 증가하지는 않는다.
98%와 2%의 가능성.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 물론 확률이 진위판단의 유일한 근거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이 위기에 대처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아님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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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응변보다 진정성 있는 자세로 해당 직원에 대한 보호조치를 취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이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