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 전염병과 운명공동체

[MT 시평] 전염병과 운명공동체

김원섭 기자
2015.06.26 03:32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염병과 전쟁은 인류가 부딪친 가장 치명적인 난관이었다. 페스트는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혔다. 14세기에 페스트는 4년 동안 유럽인구의 3분의1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유럽 봉건제도의 몰락도 사회·경제적 요인보다 페스트로 인한 노동력 부족이라고 한다. 또한 1939년과 1945년 전세계에서 전개된 2차 세계대전에서는 약 2000만명의 군인이 사망하고 4000만명의 민간인이 전염병·기아·대학살·전략폭격·제노사이드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최악의 고통이 최선의 행복을 낳고 힘든 고난이 없이는 값비싼 성공도 의미가 없다. 전염병과 전쟁의 위기를 경험하면서 인류는 스스로를 개선했다. 인류가 전염병에서 얻은 귀중한 교훈은 ‘사회적인 것’에 대한 생각이었다. 치명적인 전염병은 신분과 빈부를 가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지가 감염된다면 부자들도 위험해진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개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런 종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쟁도 이러한 점에서 사람들에게 비슷한 경험을 제공했다. 독일에서 영국으로 날아오는 로켓포탄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사람들은 그들이 개별적 유대나 가족으로만 서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도 사람들의 흥망과 성쇠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운명공동체로서 사회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회의 발견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제기했다. 알다시피 자유주의는 개인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사회적 이해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개별 인간이 자유를 누릴 때 자신의 복지를 최대화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의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믿는다. 하지만 운명공동체로서 사회의 발견을 통해 사람들은 사회 전체의 이해관계를 위해 개인 자유의 일부도 포기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전염병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는 공공병원뿐 아니라 위생과 방역체계에 우선적인 책임을 지게 되었다. 나아가 2차 대전 이후 총력전을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헌신한 국민들은 이에 대한 보상으로 의료서비스뿐 아니라 일정 수준의 소득과 서비스까지도 요구하게 되었다.

이번 메르스 사태로 우리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고 있다. 정부의 낙관적 전망과 의료진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메르스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5일 현재 확진자는 180명이고 그중에서 29명이 사망했다. 위험은 사라지지 않고 국민들은 치사율 16%의 전염병과 함께 살 방도를 찾고 있다. 메르스 사태는 겪어보지 못한 신종 감염병에서 시작한 새로운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응하는 정부의 무대책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번에도 정부는 위기의 책임을 민간병원과 나누고자 하며 국민 개개인의 의지와 대처를 주문했다. 그러나 국민은 현재의 정부를 신임할 수 있을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국 정부와 정치지도자에겐 사회의 안전과 복지를 보장할 책임감이 부족하다. 민간병원에 공공의 안전을 맡길 수 없음이 분명해졌지만 이를 대신한 공공병원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동시에 이번 사태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계층화되어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위험에 처했던 병원 직원의 상당수가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방역체계에서 완전히 배제돼 있었고 이 때문에 전염병이 더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운명공동체의 연대의식을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루속히 메르스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들이 위험에서 안전해지기 위해 정부가 운명공동체의 공적 이익을 지키고 유지할 책임을 다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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